지금 당장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을 멈춰라!

우리의 하루는 크고 작은 판단과 비판으로 가득하다.
때로는 큰 소리로, 때로는 마음속으로, 때로는 가까운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우리는 마치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이 우리의 권리인 양 자연스럽게 행한다. ‘저 사람은 왜 저러지?’, ‘나 같으면 안 그랬을 텐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요즘 어른들은…’ 이런 말들이 우리의 입술과 마음에서 얼마나 자주 흘러나오는가.
우리는 마치 자신이 완벽한 판사라도 된 듯이 살아간다.
자신은 온전하고 다른 사람과 같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이렇게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마귀가 하와를 속였을 때와 같은 모습이다. 자신만 옳고 다른 사람은 잘못되었다고 여기는 태도는 성경이 말하듯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판단하는 우리 자신은 어떤가?
남을 향해 던진 날카로운 시선을 자신에게 돌릴 때는 얼마나 쉽게 관대해지는가? 남의 작은 실수는 크게 보이고, 내 큰 허물은 작게 여긴다. 남의 동기는 의심하면서 내 동기는 순수하다고 합리화한다. 비판과 판단이 일상이 되어버린 삶,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문제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진리가 있다. 우리는 무심코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만 그것은 결국 자기를 정죄하는 일이다. 다른 사람을 향해 품는 비판적인 생각과 감정은 사실 내 안에 심기고 있다. 우리는 판단과 비판이 다른 사람을 향한 것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생각과 감정도 당연히 그 사람의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사람의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어디에 심고 있는가? 바로 자신의 심중에, 자신이 직접 심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우리가 판단하고 비판하는 그 대상에 심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판단하고 비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그 습관이 점점 더 깊어진다. 왜냐하면 그는 그것을 양식처럼 먹고 살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할 때 우리는 마치 자신에게는 그런 면이 없거나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누군가 이유 없이 미워지거나 불편하게 느껴지거나 별다른 이유 없이 그를 판단하고 비판하게 되는 것은 내 안에 동일한 문제가 존재한다는 증거다. 즉, 자기 내면에도 그와 관련된 상처와 쓴 뿌리가 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 안에는 여전히 육체의 일이 남아 있다. 왜냐하면 과거에 우리는 마귀의 자식으로서 세상의 영적 존재들과 풍조, 유전, 잘못된 전통과 습관 속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결국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은 자기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함과 동시에 자기를 정죄하는 것과 같다. 그 결과 심은 대로 거두게 되는 것이다(갈 6:7). 결국 자신도 그 사람과 같은 일을 행하게 된다. 남을 판단하고 비판한 뒤에 오히려 마음이 불편한 이유는, 전가는 했으나 자기 내면에 있던 과거의 생각과 감정을 스스로 다시 들추어냈기 때문이다.
복음의 본질은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선악을 판단하던 타락한 혼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함으로써,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하나이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데 있다. 그 모든 근원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지금 우리가 세상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인가, 아니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인가?
우리가 깨어 경계하고 가장 조심해야 할 것 중 하나는 험담의 영이 들어와 모임과 단체, 교회를 무너뜨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 모든 시작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옳고 그름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 실제로 그것은 사람 안에 있는 마귀의 본성(교만과 자기 의) 때문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결국 판단과 비판으로 나타난다. 판단과 비판은 자연스럽게 험담으로 확대된다. 험담이란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그 사람을 나쁘게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른 이를 험담하면서도 그것을 험담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험담의 대부분은 옳고 그름이라는 명분으로 포장되기 때문이다.
가정이나 단체 등 모든 공동체의 분열은 ‘옳고 그름’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판단과 비판으로 드러나고 험담으로 확대된다. 그때 험담의 영이 소속된 모든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결국 공동체는 파괴되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
험담의 영이 돌기 시작하면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그것은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구성원 간의 기본적인 신뢰가 무너지고, 그 자리에 의심과 불신이 자리잡게 되며, 사람들은 부정적인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의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끼리 세력을 형성하게 되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분열, 분쟁, 분당의 영의 통치를 받게 된다. 결국 험담의 영이 공동체를 장악하고, 그들이 성공하면 더 높은 분열의 영이 들어와 서로 싸우게 만들어 하나님의 통치가 아닌 자신의 왕국을 세운다. 과거에 다니던 교회나 지금 출석하는 교회, 혹은 다른 교회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떠올려보라. 이런 일들이 어떻게 시작되고 진행되는지 분명히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험담의 영을 어떻게 잠재울 수 있는가?
그것은 의로운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떤 판단과 비판에도 동의하지 않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는 사람이다. 단 한 명의 의로운 사람이 이 ‘험담의 사슬’을 끊고 공동체를 살릴 수 있다.
옳고 그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주신 새 계명이다. 일반적인 단체나 모임과 달리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몸은 각 지체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됨을 이루기 위해서 존재한다.
‘내용물' 에 초점을 두고 판단하는 자는 거짓자아이며 죄인이다. 반면에, 그 '내용물을 생각하는 자' 에 초점을 두고 판단하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의인이다, 거짓자아는 분열을 일으키지만 의인은 하나됨을 소중히 여긴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나 자연스럽게 습관처럼 판단하고 비판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그것이 마귀가 우리를 도둑질하고 죽이는 무기라는 사실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판단과 비판을 새롭게 배워야 한다. 판단과 비판의 생각이 들어올 때마다 그것을 주님께 올려드리자.
영적 전쟁, 손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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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전쟁에 임하는 킹덤빌더의 자세.우리는 승리를 쟁취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이미 쟁취한 승리를 선포하러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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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 야고보서 4장 11~12
출처 : 갓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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