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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과 신앙

놓치지 마세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할 기회!!

by 카이로 B.G.PARK 2025.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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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이기주의를 벗어나 하나님의 사랑을 전파하라

 

내가 중학생 때 많이 불렀던 찬양 중에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곡이 있다.

그렇다.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을 믿는다.

 

문제는 하나님의 좋으심이 과연 무엇이냐는 것이다.

좋으신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 인간들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시고 품어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진짜 좋으신 하나님이시려면

사랑의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정의의 하나님이셔야 한다.

 

정의는 악을 벌하는 것이다.

남을 해치고 악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가만히 두신다면,

하나님은 결코 좋으신 분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벌하셔야 하는 이유는,

악인을 보고도 그냥 두신다면 하나님은 결코 선하신 분일 수 없기 때문이다.

 

좋으신 하나님은 악을 심판하는 정의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모든 죄인을 죄가 드러나는 그 즉시 심판해버리는 무자비한 심판자이기만 하시고,

용서하는 사랑이 없으시다면, 그 역시 좋으신 하나님이 아니다.

 

팀 켈러 목사는 요나서에 흐르고 있는 딜레마는

‘하나님의 정의와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같이 갈 수 있느냐는 것’이라고 했다.

 

좋으신 하나님에는 양면이 있다.

“나는 무한한 사랑이 있어 모두를 용서해주고 싶다

그러나 나는 무한한 정의가 있어 죄를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문제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죄는 벌하시면서 죄인들은 용서하실 수 있느냐는 것이다.

요나가 이해하기 힘들었던 하나님의 역설을 훗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대답해주신다.

하나님을 거역한 모든 인류의 죄를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할 수는 없었다.

 

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원칙이 무너지면 영적 세계가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죗값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했다.

그렇게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동시에 실천되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요나서의 저자가 요나 자신이라는 사실에 의의가 없다.

물고기 뱃속의 기도는 요나와 하나님만이 아는 이야기인데,

다른 사람이 썼을 리가 만무하다.

 

문제는 당시 북이스라엘에 큰 영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던 선지자 요나가 쓴 글이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과 후세 사람들이 모두 큰 관심을 가지고 읽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바로 그 때문에 요나는 요나서를 쓰면서 나름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요나서는 이스라엘의 적 니느웨의 심판을 막는 회심의 메신저로 요나가 쓰임받은 스토리다.

이 책이 퍼지게 되면 그는 하루아침에 조국 이스라엘을 배신한 매국노로 낙인찍힐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요나는 굳이 이 책을 썼다.

그것은 성령님의 강력한 감동이 있어서였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요나서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반드시 전해야 할 메시지가 있어서였을 것이다.

 

“보아라. 아예 나를 믿지 않던 악독한 니느웨도 회개하니까 내가 용서하지 않느냐.

하물며 너희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이전부터 내가 택한 민족이 아니냐.

니느웨는 말씀을 들은 지 하루 만에 회개했는데,

 

이스라엘 너희는 150년 동안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다.

너희는 스스로 그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너희 북이스라엘도 회개하고 내게로 돌아온다면,

내가 너희를 용서하고 심판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북이스라엘은 끝내 회개하지 않는다.

그래서 백 년 뒤에 북이스라엘은 앗수르 제국의 손에 망하게 된다.

(앗수르의 수도였던 니느웨는 요나의 설교를 듣고 한때는 회개했지만, 세월이 지나고 세대가 바뀌면서 다시 악해졌다). 어쨌든 그 후 수백 년이 지나 예수님이 오셨을 때도 이스라엘의 영적 강퍅함은 변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렇게 정성껏 복음을 전하셨는데도

그들이 회개하지 않자 한탄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마12:41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요지는 이것이었다.

“니느웨처럼 악한 사람들도 요나같이 열정 없는 선지자가 가서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했다. 그런데 너희는 수많은 선지자들이 가서 말씀을 전했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직접 와서 말씀했는데도 회개하지 않는다. 그러니 너희들이 어떻게 심판을 견디겠느냐. 부끄러운 줄 알아라.

 

주님은 탕자의 형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히려 이방인 탕자보다 더 회개하지 않는 모습에 너무 가슴이 아프셨던 것이다.

 

요나는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도 아니요,

사역을 안 하던 사람도 아니요, 나쁜 범죄자도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님을 위해 오랜 세월 충성스럽게 사역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을 자기 민족만 받게 하려는 좁은 시야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것이 선민이라고 자부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문제였다.

 

이스라엘에게는 자신들만 선택받은 자요, 은혜받은 자라는 오만함이 있었다.

하나님의 사랑이 다른 민족들에게 베풀어지는 것을 싫어했다.

그들은 축복의 종착역이 되기를 원했지, 축복의 통로가 되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요나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선지자로서 그런 사고방식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다루시면서,

그런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각을 깨우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은 선택하신 백성들의 영적 이기주의를 싫어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축복하신 것은 모든 열방 민족들에게 축복을 흘려보내는 통로로 그들을 사용하시고자 함이었다. 그것이 철저한 애국주의자 요나를 변화시키셔서 요나서를 쓰게 하신 이유다.

 

오늘날 요나서를 읽고 있는 우리 또한 하나님의 그 마음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먼저 복음을 받은 우리는 복음에 빚진 자의 심정으로 열방을 향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복음의 메신저가 되어야 한다. 재능과 건강과 재물과 시간 등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전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것들을 우리 자신을 위해서만 쓰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데 쓰기 원하신다.

 

그 부르심을 외면한다면 사랑의 추적자는 반드시 우리를 쫓아 오실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도 있게 하라.

그것이 생명의 길이요, 축복의 길이다.

 

- 사라질 때까지 기도하라, 한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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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 고린도후서  5:14~15

 

† 기도

주님께서 나를 택하셔서 자녀로 삼으셔서 공의와 사랑, 그리고 은혜로 채우시고 누리게 하셨음을 고백합니다. 이제 그 누린 사랑과 은혜를 내 안에 붙잡아 두는 것이 아니라

그 복음을 전해준 자들에게 빚진 마음으로 나의 주변에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복음의 메신저가 되기 원합니다. 나에게 주신 재능, 건강, 재물, 시간을 모두 주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주님 원하시는 그곳에서

또 하나의 축복의 통로가 되어 넉넉하게 흘려 보내며 살아가기 원합니다.

 

† 적용과 결단

내게 주신 재능, 건강, 재물, 시간 모두 주님께서 주셨음을 인정하고

축복의 통로로 사용되기에 부족함 없이 먼저 순종하며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넉넉하게 흘려 보내는 하루 되길 원합니다.

 

출처 : 갓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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