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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과 신앙

“정말 최악이야”, 이 말을 안 듣는 방법!!

by 카이로 B.G.PARK 2025.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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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최악의 자리에는 십자가가 꽂혀 있다

 

 

때때로 나는 내 삶이 스카이워크를 걷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남들이 그 위에서 바들바들 떠는 것을 볼 때는 모른다. 그냥 몇 걸음 걸어갈 때까지도 괜찮다. 눈이 아래로 향하면 그때부터 아찔해진다. 두려움이 밀려온다. 떨어질 것 같다. 한 걸음을 내딛기도 벅차다. 실제로 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죽을 것 같다.

 

스카이워크가 그렇듯이 인생도 높이 올라갈수록 더 불안하다. 그나마 인생이 스카이워크 같으면 다행이다. 하지만 인생은 살얼음판이다. 얇은 막이 나를 지탱하고 있지만, 폭삭 무너질 것 같다. 내 밑은 나락이고, 내 밑은 죽음이다.

 

몇 년 전에 있었던 사건이다.

한 사람이 가족과 함께 동반자살을 했다. 이 사건이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준 이유는 그 사람에게는 10억짜리 집이 있고, 은행에 3억이 예금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돈이 많은 사람이 스스로 죽을 수 있냐고 물을 필요는 없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그 사람 역시 자신의 밑은 죽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가 무능해서 최악이 오는 게 아니다.

 

구약에서 가장 위대한 선지자를 꼽으라고 한다면 엘리야다. 그는 아합 왕 시대에 살았다. 아합 왕은 아내 이세벨과 함께 지독한 우상 숭배자였다. 선지자들을 죽이고 시대를 혼탁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은 분노하셨고 비를 멈추셨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람을 대표하여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맞짱 뜨기로 한다. 종목은 제단을 쌓고 하늘에서 불 내리기다.

 

약속을 잡고 산에 올라갔더니 상대는 850명이나 나왔다. 반칙이다. 이 정도 인원이면 한 사람이 꿀밤 한 대씩만 때려도 엘리야는 죽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야는 담대하게 말한다.

 

“주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을 알게 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그랬더니 불이 떨어진다. 그는 실로 위대한 승리를 거둔다. 하늘에서 불을 내린 선지자는 그 전에도 없었고 그 후에도 없었다. 여기서 엘리야에게 어울리는 수식어는 담대함, 용기, 위대함, 능력, 독보적인 같은 단어이다.

 

하지만 엘리야는 그 직후 바로 몰락한다.

이세벨이 죽이겠다고 하자 의욕을 상실한 무력한 패배자의 모습뿐이다. 번아웃이 왔다. 며칠 전의 영광은 사라지고 초라하고 비참한 모습이다. 하나님께 “차라리 날 죽이십시오”라고 말한다. 상황도 최악일뿐더러 그 상황 속에 있는 그의 모습도 최악이다.

 

이 정도가 되면 우리는 스스로 포기한다.

 ‘난 끝났어.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여기에서 엘리야에게 어울리는 수식어는 초라한, 자포자기, 절망적인, 비참한, 죽고 싶음 같은 단어이다.

 

좌절한 채 광야에서 잠든 엘리야를 누군가 흔들어 깨운다. 하나님은 그를 어루만지신다. 일으키신다. 먹이신다. 그리고 이제 충분히 쉬었으니 어서 가서 일하라고 잔소리하지 않고 또 자게 내버려두신다. 엘리야의 버거움과 고단함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또다시 어루만지고 일으키고 먹이신다.

 

이것은 어릴 적 몸살에 걸렸을 때 기절하듯 쓰러져 있는 내게 엄마가 하신 행동이기도 하다. 어루만지고 일으키고 먹이신다. 엘리야는 지금 최악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최악의 엘리야를 사랑하신다.

 

성경은 성공담이 아니다. 도망자, 패배자, 최악의 자리로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자신의 세계 끝에서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 거기서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무도 모세를 돌아보지 않을 때 거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다. 요나가 바닷속 깊은 물고기 배 속에 있을 때 거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다. 베드로가 도망갔을 때 거기에 예수님의 사랑이 있었다. 탕자가 끝까지 갔을 때 거기에 아버지의 사랑이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최악의 자리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았다. 뺨을 후려치고, 벌거벗기고, 침을 뱉고, 조롱했다. 하나님의 아들은 무력하게 십자가에서 죽임당했다. 골고다, 죽음의 골짜기에 십자가가 세워졌다. 무덤에 갇히고 돌문이 닫힌다.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다. 최악이다.

 

그러나 그 최악의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셨다. 무덤이 열렸다. 주님이 제자들을 찾아오셨다. 사랑으로 회복시키셨다. 최악은 생명으로 바뀌었다.

 

당신의 최악의 자리에도 십자가가 꽂혀 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다. 당신의 인생에 어떤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든지 영원한 생명, 그 영원한 사랑이 거기에 있다.

 

나의 최악의 자리에는 십자가가 꽂혀 있다.

 

 

- 대체 왜 나를 사랑하세요?, 임형규

 

† 말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로마서 5:8

 

†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가장 어둡고 최악인 그 자리에서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 당신의 사랑을 온전히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최악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묵상하며 하나님과 그 어두움을 이겨내는 믿음을 허락하여주시옵소서. 아멘

 

† 적용과 결단

최악의 자리에서도 주님은 변함없이 나와 함께 하셔서 넘치게 부어주시는 사랑으로 오늘을 살게 하십니다. 어떤 상황과 환경에도 주님을 꼭 붙들기 원합니다.

 

출처 : 갓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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