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랑받고 싶었다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들은 가끔씩 자신을 애정 결핍이라고 소개한다. “왜 손톱을 물어뜯어요?”라고 물으면 “저 애정 결핍이에요”라고 대답한다. 그들은 다리를 떨거나 SNS 좋아요를 구걸하기도 하며 때때로 내 돈으로 쇼핑했다고 말하기보다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말한다.
당신의 애정 결핍에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부모님의 사이가 좋지 않았거나 부모님이 사랑 표현에 인색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또 성장 과정에서 그다지 사회적이지 않아 친구들과 관계가 좋지 않았거나 불행하게도 안 좋은 패거리들에게 따돌림과 폭력의 표적이 되었을 수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을 수도 있고 집안이 경제적으로 가난했거나 자신의 외모 탓일 수도 있다.
이런 증상과 현상적 원인들은 나무로 치면 열매에 해당한다. 그리고 열매를 맺게 한 뿌리가 있다. 열매는 여럿이지만 뿌리는 하나로 귀결된다. 원인은 인간의 유한성과 한계성이다. 이러한 인간의 유한성을 성경은 ‘죄’라고 말한다.
사랑에 대해 적용해보자면,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기에는 온전하지 못하다. 사랑하는 건 분명한데도 온전한 사랑을 주지 못한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상처를 준다. 사랑의 주체인 사람이 어딘가 깨어지고 찢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죄인들끼리 어울려 사는 가운데 애정 결핍과 상처는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에게 상처받아서 힘든 것을 또다시 유한한 인간으로 채우려 한다. 이것이 죄의 악순환이다. 사람은 채울 수가 없다. 당신이 채우고 싶은 사랑의 빈자리는 인간의 것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덫에 걸린 짐승이 몸부림칠수록 그 덫이 살갗을 파고들어 더 아픈 것처럼, 사람의 것으로 나를 채우려 발버둥칠수록 더 아프게 될 것이다. 더 공허해질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인 삼손은 전형적인 애정 결핍의 증상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초인적인 힘을 주셨는데, 그것으로 의미있는 행동을 하지 못한다. 화가 나면 성문짝을 떼고, 사람들을 때려죽이고, 여우 300마리를 잡아 꼬리를 매고 꼬리에 불을 붙이고, 사자를 때려 죽인 걸 가지고 사람들 앞에서 수수께끼를 낸다.
그런데 이런 기행의 가운데에는 여자가 있다. 이성과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삼손은 스스로를 더 악화시킨다. 이것이 죄의 특성이다. 삼손은 사랑받고 싶다.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고 싶다. 그 사랑으로 자신을 채우고 싶다. 진정한 사랑을 경험해야 아무도 막을 수가 없는 무적 바보의 광란의 질주를 멈추게 된다.
사사기 15장에 보면 삼손이 나귀 턱뼈를 집어 들고 블레셋 사람을 천 명이나 때려죽이는 사건이 나온다. 천하의 삼손도 그 정도쯤 되니 힘들어서 탈진한다. 물론 사람이다보니 몸도 지쳤겠지만, 수많은 사람과 싸워야 하는 그 길고 잔인한 싸움에 마음이 얼마나 지치겠는가. 이때 삼손은 자신의 목마름을 가지고 처음으로 하나님을 찾는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 부르짖음에 응답하셔서 물을 터뜨려 내신다. 마치 “너의 목마름은 내가 채운단다. 그러니 애정 결핍을 가지고 다른 곳에서 사고치지 말고 내게로 나오거라”라고 삼손에게 말씀하시는 듯하다.
“부르짖는 자의 샘”이라는 이름의 ‘엔학고레’는 지금도 애정 결핍으로 허덕이며 목이 마른 자들을 부르시는 주님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다음 본문에 그 유명한 삼손과 들릴라의 이야기가 나온다. 삼손은 ‘엔학고레의 하나님’을 버리고 ‘들릴라’를 선택했다.
삼손은 들릴라에게 사랑받고 싶다. 그래서 자신의 욕망의 목마름을 그녀의 사랑으로 채우려 한다. 애석하게도 거기에는 함정이 있었다. 결국 그것이 그를 궁지로 몰아넣고 그의 삶을 파멸시키게 된다. 애정에 목마른 사람들이 범하는 가장 큰 실수는 ‘눈앞에 있는 평범한 진짜’는 몰라보고 ‘저만치 떨어져 있는 자극적인 가짜’에 더 빠져든다는 것이다.
첫째 딸이 7살 즈음이었다. 은율이가 물었다. “아빠, 나 사랑해?”, “응, 당연하지!”, “왜 사랑해?”, “은율이가 아빠 딸이니까 사랑하지.” 그것은 아이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아이가 원하는 대답은 밥을 잘 먹어서, 숙제를 잘 해서, 책을 잘 읽어서, 얼굴이 예뻐와 같은 거였다. 만일 이런 답을 해주었다면 아이는 활짝 웃으며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정답이 아니다. 나는 내 딸이 우리 동네 아이들 중에 밥을 가장 잘 먹어서 사랑하는 게 아니다. 밥을 못 먹어도 사랑한다. 내 꼬맹이가 책을 잘 읽는 건 자랑스럽지만, 그것이 내가 딸을 사랑하는 본질은 아니다. 글자를 하나도 못 읽어도 나는 내 딸을 사랑할 것이다.
정답은 매우 덤덤하다. 정답은 심심하다. 그래서 우리는 정답보다 더 자극적인 가짜를 원한다. 삼손이 엔학고레의 하나님보다 들릴라에게 빠져들 듯이 우리도 ‘더 자극적인 가짜’를 좋아한다.
처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구원의 기쁨과 환희로 내 영혼이 벅차오르게 된다. 그렇게 그리스도인이 되고 신앙생활을 시작해서 몇 년이 지난 어느 순간, 복음이 맹숭맹숭해지는 때가 오기 마련이다. 예수를 믿는 내 삶은 별 볼 일 없고 덤덤한데, 바깥 세상은 화려해 보인다. 주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신다는 복음보다 ‘그래도 내가 세상에서 잘나가고 소유와 성취가 있어야 주님이 나를 통해 영광도 받으시고 나도 사랑해주시는 게 아닌가’라는 마음이 든다. 하다못해 교회에서 봉사와 섬김을 남다르게 해야 주님이 날 사랑해주실 것 같다.
당신도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께 직접 물어보라. “하나님, 저 왜 사랑하세요? 그래도 제가 죄도 잘 안 짓고 교회 잘 다녀서 사랑하시는 거죠? 저는 헌금도 하고 봉사도 열심히 하잖아요. 이번에 회사에서 승진했고, 자녀교육도 잘 시켰어요. 제가 성경 구절도 많이 외우고, 양육 훈련도 다 받으니까 저를 사랑하시는 거죠?”
하나님의 대답은 “네가 내 자식이니까 사랑하지”이다. 자녀라서 사랑하시는 것이다. 뭔가를 잘한다면 자랑스러울 수는 있겠으나 그것이 사랑의 조건은 아니다. 반대로 뭔가를 잘 못해도 큰 상관없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식으로 대하신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는 어깨에 힘을 주지 않아도 된다. 숨겨놓았던 초라한 모습을 드러내도 된다. 오히려 못난 모습으로 나아갈 때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날 무조건 사랑하시는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내가 인정받는 것, 내가 무기로 삼는 것이 나를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 있다. 십자가는 자기부인을 말한다. 우리를 힘들게 하려는 게 아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셨다. 그 십자가의 방식이 사랑의 방식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는 사랑받을 수 없다. 낮아지고, 왜소해지고, 초라해져야 사랑받을 수 있다. 나는 이제 사랑받기 위해서 십자가를 붙든다. 주님의 한없는 사랑이 나를 채우고 흘러넘친다. 나도 나 자신을 부인하고 나를 내어줄 수 있게 된다.
- 대체 왜 나를 사랑하세요?, 임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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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하지 마, 넌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늘 숨 쉬듯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그분의 말할 수 없는 사랑이 나를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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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 마태복음 3:17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사랑 받기 위해서 애쓰며 살았던 지난 날을 내려놓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해주셨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채워졌습니다. 이 사랑을 놓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여주시옵소서. 아멘
† 적용과 결단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 사랑 받기 위해 내가 무기로 삼는 것들을 모두 버리기 원합니다.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가 오직 십자가만 붙드는 하루 되길 소망합니다.
출처 : 갓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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