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말 하나님으로 충분한가?
예수님은 친히 금식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앞으로 제자를 삼고 병든 자를 치유하며 복음을 전하고 십자가를 지는 중요한 시대적 전환을 앞두고, 먼저 하신 것은 온전히 금식하는 일이었습니다.
40일간 예수님은 먹지 않고 주리셨습니다. 물만 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성령에 이끌리셨고, 금식 이후에도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셨습니다. 금식은 예수님께서 공적 사역을 감당하시기 전에 거쳐야 했던 필수 준비 단계였습니다.
성경의 최초의 죄는 식탐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먹음직하고 보암직한 금단의 열매를 따 먹었습니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말씀을 무시하고 욕망에 못이겨 먹었을 때 사망이 임하고 말았습니다.
야곱의 형, 에서는 어떻습니까?
배고프다고 그 소중한 장자의 복을 경히 여기고 팔아버렸습니다.
성경은 그러한 에서를 세속적인 사람, 즉 하나님이 없어도 설명되는 사람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위장에 따라 살면 위장의 종이 됩니다.
다니엘이 왕의 좋은 음식을 거부한 이유가 뭘까요? 자신의 위장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자신은 바벨론 문화의 포로가 될 것이고 종이 될 것임을 간파한 것입니다. 그것을 청소년 시기부터 간파했던 겁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원수가 있다고 했는데, 바로 그들의 특징이 탐식자였습니다. 그들의 하나님, 그들의 신은 “배”라고 했습니다. 배, 위장이 이끄는 대로 사는 삶은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왜요? 육신은 성령의 소욕을 거스르기 때문입니다. 그 마지막은 멸망입니다. 먹는다고 정죄해서도 안되지만, 식탐은 결코 가벼이 여길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막 수도사들은 영혼을 죽이는 일곱 가지 죄 중에서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죄를 식탐, 탐식으로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금식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금식을 해보면, 우리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드러나게 됩니다. 금식은 유혹과 시험을 이기는 도구이자, 동시에 그 자체로 테스트, 즉 시험입니다. 금식할 때 그 사람의 마음이 자기만족과 세상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이 밝혀질 때, 사탄은 깜짝 놀라며 물러납니다. 식탐과 정욕을 따라 사는 사람이 대다수인데 그렇지 않으니까 사탄이 빌붙어 있을 마음, 빈틈이 없는 겁니다. 마음의 중심에 사탄이 있을 자리가 없으니 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금식을 해보면 우리의 만족과 기쁨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과 복인지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금식의 목표는 음식에 덜 의존하고 하나님께 더욱 의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 3절을 보면 사탄이 예수님에게 돌을 빵으로 만들라고 합니다. 사탄의 논리는 이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광야에서 만나를 주신 이유는 백성들에게 곤경 중에도 기적을 바라보도록 가르치기 위함이었으니, 너도 만나와 같은 기적의 빵을 이 광야에서 굶주린 가운데 만들어서 먹어라!”
얼핏 맞는 이야기 같습니다. 하나님도 기적과 같이 만나를 주셨습니다. 백성들이 노력하지 않았는데 은혜로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돌을 빵으로 만들어 기적을 발휘하면,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만나와 다를 바가 무엇입니까?
사탄도 성경을 기가 막히게 압니다. 그러나 사탄은 교활하게 핵심 의도를 왜곡시킵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교묘하게 우리의 초점을 하나님이 아니라 기적의 빵에 두려고 합니다. 그것이 ‘쉬운 길’, ‘편한 길’입니다. 기적, 그리고 기적에 의해 만들어진 빵에 의존하라! 얼핏 맞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셨던 의도는 무엇이었나요? “빵이 아니라, 나를 신뢰하라 돈과 재산 믿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
여러분 설령 그것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빵, 돌이 바뀐 빵이라 할지라도 빵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빵을 주시는 분을 의지해야 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빵에서 만족을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되고, 빵의 근원 되시는 진정한 생명의 빵이신 주님으로부터 만족을 얻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시험의 본질을 간파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살라는 것은 그분만 의지하며 귀를 기울이며 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능력이 없어서 돌을 빵으로 만들 수 없으셨을까요? 아닙니다.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처한 곤경에서 빠져나오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함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금식을 통해 빵에 굶주려 있지 않고,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에 더 굶주려 계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심지어 내가 사는 것보다 내가 죽는 것이 이 백성이 사는 길임을 금식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금식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음식에 굶주린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하나님께 굶주려 있는가입니다. 즉 내가 정말 하나님으로 충분한가입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함으로써 이스라엘이 실패한 자리에서 승리하셨고, 금식을 통해 육신의 소욕을 죽이고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며 성령을 따라 행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처럼 정기적으로 금식을 훈련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다니엘 21일 금식기도, 김다위
† 말씀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 요엘 2:12~13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무엇에 굶주려 있는지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세상의 것에 굶주린 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 굶주린 자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온전히 하나님만 따라가게 하여주시옵소서. 아멘
† 적용과 결단
나의 마음에, 생각에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들이 아닌 하나님만으로 충만한 하루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 외에 것들은 금식함으로 내가 어떤 것에 의지하고 있는지 점검하며 다시금 주님께 집중하는 시간 되기를 소망합니다
출처 : 갓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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