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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과 신앙

끝까지 내려놓지 못한, 그것은?

by 카이로 B.G.PARK 2024.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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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제 안의 여전히 깨지지 않은 부분을 봅니다

 

나는 미국에서 몽골로 오면서 많은 걸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붙들고 있는 게 있었다. 바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였다. 이것은 내 자아에 밀착되어 있어 잘라내기가 너무 힘들 뿐 아니라, 숨어있어서 쉽게 드러나지도 않았다. 유학 기간에도 하나님의 다루심을 받았지만 여전히 내 안에 잔재가 있음을 깨달은 계기가 있었다

 

어느 날 저녁, 교회에서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물으셨다.

‘너, 마음이 상한 부분이 있구나. 왜지?’

생각해보니 그날 몽골국제대 학생들의 비자 문제로, 몽골 주재 한국 대사관에 신임 대사를 만나러 간 일이 떠올랐다. 내가 그 학교 교수라는 설명을 듣고 대사가 말했다.

“몽골에는 대학 총장, 부총장이라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알아보니 대학이 180여 개나 된다네요. 대학이라고 다 대학이 아니지요. 한국에서 지었다는 대학도 한국 대학처럼 생각해서는 안 되겠더군요.”

 

내가 말했다.

“다른 대학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속한 몽골국제대학교에는 자격을 갖춘 교수님들이 많습니다. 카이스트와 같은 한국의 좋은 학교에 있다가 자리를 내려놓고 온 분들도 있고, 박사학위 소지자도 일곱 명이나 됩니다. 저도 갈 곳이 없어서 이 학교에 온 게 아닙니다.”

 

그 대사가 말했다.

“‘잘생겼다’, ‘공부 잘한다’라는 말은 다른 사람이 해줄 때 의미가 있지 자기가 할 이야기는 아니지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서 그 앞에선 함구했지만 왠지 마음에 스산한 바람이 일었다. 그런데 교회에 와서 기도하는 중에 내 마음에 생채기가 났다는 걸 성령께서 알게 하셨다. 나는 하나님께 씁쓸한 마음을 보이며 이해를 구했다.

 

‘다 아시지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 모습에서 향유 옥합을 본다.’

그리고 바로 다음 말씀이 내 마음을 깊숙이 찔렀다.

‘그런데 그 옥합이 예수의 발 앞에까지는 드려졌지만, 여전히 깨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으려 하는구나.’

 

이 말씀에서 깨지지 않은 내 자아를 보았다.

예수님의 발 앞까지는 갔지만 정작 깨져야 할 때 깨지지 않으려는 자존심과 사람에게 존중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에 상처를 받은 거였다. 속에서 깊은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나는 애통해하며 하나님 앞에 다짐했다.

 

‘하나님, 제 안의 여전히 깨지지 않은 부분을 봅니다. 제 옥합을 깨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발 앞에 드려졌어도 깨지지 않은 옥합은 향기를 발할 수 없다. 옥합이 깨져 안에 있는 향유가 다 흘러나와야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념할 수 있다.

 

한번은 경기도의 한 교회에서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몽골국제대를 방문했다. 나는 우연히 지나가다가 그들을 소개받았는데, 수업을 마치고 나오다가 그중 한 장로님과 마주쳤다. 그가 내게 물었다.

 

“정말 하버드 나왔수?”

“…예.”

“근데 왜 이딴 대학에 있는지 모르겠네.”

나는 ‘이딴 대학’이라는 말에 화가 나고 답답했다.

‘아니, 장로님이라는 분이 헌신과 선교에 저토록 이해가 없나?’

 

그런데 집에 돌아와 기도를 드리는데 그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하나님께서 내가 마음에 원망을 품고 그를 판단한 걸 가르쳐주셨다. 내가 왜 화가 났는지 본질적인 이유를 알게 하셨다. 그것은 그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게 학교를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이 없었다.

 

나는 몽골에 와서 학교의 어려운 모습을 보면서 1개월 정도 힘든 적응 기간을 보냈다. 그래서 당시 같이 하버드대를 졸업한 친구들이나 미국 교수님들에게 내가 이 학교에 있음을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았던 게 주님의 빛 가운데 드러났다. 그런 마음이 있기에 다른 사람의 말에 마음이 상했다는 걸 알았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로 너를 평가하지 않는다.

네가 내게 누구이며 어떤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는가가 중요하단다.’

 

우리가 어느 교회, 선교회, 학교, 기관, 부서에 어떤 지위로 있는지는 하나님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저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서 보실 뿐이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 앞에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모든 사역자가 꼭 넘어야 할 산과 같은 문제이다. 예수님도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사단은 예수님에게 성전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라고 유혹했다. 성전 아래는 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으며, 종교 지도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만약 그곳에서 뛰어내리면서 천사들이 당신을 수종 들게 했다면, 모든 사람이 그분을 메시아로 인정했을 것이다. 단번에 세상 이목을 집중시키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부하셨다. 공생애 기간에도 군중을 모아 당신 편에 두시는 일에 관심이 없으셨다. 쉽게 갈 수 있는 길과 인기와 명예를 통해 이루는 사역이 십자가의 사역과 상치되는 걸 아셨기 때문이다.

 

- 내려놓음, 이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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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 마태복음 4:5~7

 

† 기도

주님, 제 안에 여전히 깨지지 않은 자아를 바라봅니다.
주님의 발 앞에서 깨져야만 주님의 십자가를 기념할 수 있음에도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주님 불쌍히 여겨주셔서 내 안에 깨지지 않은 자아가 주님 앞에서 철저히 깨지고 깨져서 내가 행하는 모든 것에서 주님만 남기를 간구합니다. 주님, 제 안에 있는 깨뜨리지 못한 옥합을 주님의 발 앞에서 깨뜨립니다. 주님 기뻐 받아 주시옵소서.

 

† 적용과 결단

주님의 발 아래에 내려놓지 못하고 꼭 쥐고 있는 것들을 주님의 발 아래에 두고 깨뜨리기로 결단합니다. 풍성히 부어주시는 주님의 사랑으로 온전히 내려놓겠습니다

 

출처 : 갓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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