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용광로에서 빛나는 마지막 보물
하나님의 용광로에서 가장 마지막에 드러나는 보물은 ‘십자가’다. 세상 사람들의 고난은 고통의 흔적인 상흔으로 남지만, 성도의 고난은 하나님의 얼굴을 드러내는 거울이 된다. 가장 위대한 고난의 거울은 바로 ‘십자가’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목게 하셨다. 이 화목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죄 없이 고난당하셨다.
아버지에게도 버림받아야만 했던 자리, 그래서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옮겨달라고 밤새 기도하실 만큼 어려운 고난의 십자가를 주님이 지셨다. 그리고 그 고난의 끝에서 십자가는 하나님과 우리의 화목을 이루는 놀라운 은혜의 메시지가 되었다
욥은 원인도 모를 고난을 당하며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세 친구와 끝도 없는 논쟁을 하면서 하나님을 만났다. 그리고 더 이상의 논쟁은 필요 없어졌다. 답을 찾을 이유도 없어졌다. 그들은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욥과 친구들 사이에서 서로 용서를 구하고 용서하도록 중재의 대화를 하신다. 세 친구를 꾸짖으시며 욥이 옳다고 말씀하셨고, 욥을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고 하신 하나님은 욥이 세 친구를 위해 기도하자 용서하시고 기쁨으로 그들을 받아주셨다. 이 장면이 욥기의 결론이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곳이 십자가다. 하늘 문은 십자가를 통한 용서와 자비의 열쇠로 연다.
그래서 욥기의 결론은 가장 마지막에 그려진 두 배의 축복이 아니라 욥이 용서하고 욥에게 용서를 구하도록 중재하시는 하나님의 십자가 정신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신약에서 이런 고난을 당한 사람이 있다면 사도 바울일 것이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성공 가도를 달리던 사람이었다. 그런 바울의 삶이 예수님을 믿고 난 후부터는 고난 그 자체였다.
바울의 모습은 빛나고 고운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많이 걷고 배를 타기도 하며 먼 거리를 다녔기에 늘 검게 그을린 얼굴에, 몸 여기저기에 상처와 흉터가 가득했을 것이다. 모진 고문에 손가락이 굽어 있었을 수도 있고, 돌에 맞아 아물지 않은 흉터들이 여기저기 있었을 수도 있다.
이런 고난을 당한 바울은 자신의 삶에 그려진 고난의 상처를 이렇게 말한다.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갈라디아서 6:17
그는 고난의 삶이 남긴 흉터를 자신의 몸에 지닌 예수의 흔적이라고 말했다. 고난은 내 몸에 지니는 십자가의 흔적이며, 예수를 드러내는 메시지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용서와 사랑으로 열매 맺게 된다.
고난의 길 끝에서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를 묵상할 수 있다면, 그 고난은 더 이상 고난이 아니라 축복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의 순간을 겪게 될 것이다.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때마다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우리 몸에 그리스도의 흔적을 갖는 은혜와 회복의 시간으로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고난은 십자가에 이르는 축복의 여정이다.
- 고난극복
† 말씀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 갈라디아서 6:17
† 기도
너무나 힘겨운 이 고난의 시간 가운데서 주님이 나를 위해 달리신 십자가를 바라보기 원합니다. 고통의 순간에서도 주님을 생각하기 원하며, 주님의 그 사랑을 묵상하기 원하고, 주님께 시선을 떼지 않기를 원합니다. 비록 상황이 나를 압도하여도 이 시간은 주님의 흔적을 갖는 시간이 될 것이며 이 고난 뒤에서도 역사하실 주님을 바라볼 것입니다. 보이지 않아도 주님은 역사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 적용과 결단
십자가 사랑으로 인해 나는 용납 받았고, 용서 받았음을 기억하며 주님의 그 사랑으로 상처와 아픔이 되는 이들을 용서와 사랑으로 대하기 원합니다
출처: 갓피플
'생활과 신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끝까지 내려놓지 못한, 그것은? (1) | 2024.12.18 |
---|---|
“나도 빨리 도와주고 싶단다, 하지만 …” (0) | 2024.12.17 |
지금 주님이 ‘이곳’을 도우라고 하십니다!! (0) | 2024.12.06 |
아시나요? 구원받은 자의 특징!! (0) | 2024.12.05 |
줄을 잘 서야 합니다! 지금 어느 줄에? (2) | 2024.1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