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야 할 나와 지켜야 할 나
이 학생의 질문은 한마디로 ‘교회와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정반대’라는 거였습니다.
특히 삶의 제일 근본적인 전제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교회에 가면 ‘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나를 버리는 자기 부인’을 강조하지만, 학교에서는 ‘나를 실현해라, 나를 드러내라’라고 한다는 거지요. 이 모순을 해결하지 않고는 심리학 공부도, 신앙생활도 잘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사실 굉장히 어려운 질문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심리학을 공부하는 신앙인으로서 지금도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중입니다. 그 과정에서 현재까지 이해한 내용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덴마크의 동화 작가 안데르센이 쓴 〈미운 오리 새끼〉부터 시작하지요. 먼저는 이 동화에 나타나는 ‘나’가 둘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는 원래의 나, ‘참 나’, 곧 백조입니다. 그런데 이 백조는 자신을 ‘오리’로 알고 살았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나’입니다. ‘나는 오리’라는 생각이 ‘자기관’입니다. 오리 틈에 살면서 주위에서 다 오리라고 하니까 자신을 오리라고 생각하게 된 겁니다. 그리고 ‘미운’ 오리라고 하니까 그런 줄 알고 산 겁니다. 왜냐하면 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이 다른 오리들과 달랐거든요.
일상에서는 대부분 인식하지 못하지만, 최소한 내 안에 두 개 이상의 ‘나’가 있습니다.
진정한 나, 즉 ‘참 나’가 있고, 나라고 생각하는 나, 즉 ‘자기’(自己)가 있지요. 위 동화에서 ‘참 나’는 백조입니다. 하지만 ‘자기’라고 부르는 또 다른 나, 오리가 있지요. 그래서 미운 오리는 자신이 사실은 백조임을 모르고 미운 오리로 삽니다.
미운 오리는 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과 앞에 있는 백조를 비교해 본 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백조임을 깨닫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나를 정확히 비춰주는 호수, 즉 거울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과 비교할 대상, 즉 백조가 있어야 합니다. 만약 자기 현재 모습과 비교할 모델이 없다면 자신이 백조임을 알 수 없으니까요. 자신이 백조임을 깨달은 후에는 오리로 살고 있는 자신을 버리면 버릴수록 백조인 본래 나의 모습에 다가가게 됩니다.
성경에 쓰여 있는 대로 ‘가짜 나’를 매일 십자가에 못 박으면 ‘참 나’에 다가갈 수 있지요.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참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면서 ‘모델’이십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전 15:10)라고 한 표현에 대한 심리학적 설명입니다.
지금까지 나를 잘못 알고 살았는데, 오늘 내가 진짜 나답게 살아가는 건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라는 거지요. 사도 바울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고, 유대교 신앙이 돈독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앞장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을 죽이려고 혈안이 돼서 돌아다녔지요.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살다가 예수님을 만난 후 180도 달라졌습니다.
진정한 ‘나’를 찾고 위대한 선교 역사를 이루었지요.
이런 과정을 거친 이들은 하나님을 만나기 전후로 이름이 바뀝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시몬이 베드로로, 사울이 바울로 바뀌었지요. 심리학적으로 이름이 바뀐다는 건 자기관이 바뀌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누구인지를 규정하는 ‘정체성’이 바뀌지요.
그러면 교회에서 ‘나를 죽여야 한다’고 말할 때의 나는 누구인가요? 그것은 오리로 살아가는 ‘나’입니다. 그런 나는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참 나’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심리학에서 말하는 실현해야 하는 ‘나’가 자명해집니다. 백조로 살아가라는 겁니다. 진정한 나를 찾고 실현하라는 겁니다. 이 중요한 사실을 이해한다면 교회와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이 어긋나지 않음을 알 수 있어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形象)을 따라 지음 받았다는 것은 완성체로 태어났다는 말이 아닙니다. 형상은 하나의 잠재력 혹은 가능성입니다. 살면서 그 잠재력이 실체로 드러나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형상을 ‘실체화’(실현)해야 함을 의미하지요. 그렇게 완벽하게 하나님의 형상이 실현된 모습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인 동시에 인간이시지요.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심리학적으로는 가능성을 지니고 태어나는 인간이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형상을 실현하며 살아감을 의미하겠지요. 그것이 성화의 과정이며,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이루어야 할 책무입니다.
- 원더풀 카운슬러, 한성열
† 말씀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 고린도전서 15:31
† 기도
주님, 나도 십자가에 옛 자아를 죽이고 주님께서 대속하여 주셔서 새롭게 된 주님의 형상 닮은 자아로 살아가기 원합니다. 내가 가진 생각, 판단, 기준, 계획, 내가 세운 우상들이 주님의 형상 닮은 삶을 살아내지 못하게 나를 막을 때마다 주님의 도우심 구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주님 닮은 삶 살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주님 앞에 엎드리기 원합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주님 더욱 붙들기 원합니다.
† 적용과 결단
주님보다 앞서는 삶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 구하며 그 인도하심 따라 사는 삶 살기를 소망합니다.
출처 : 갓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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