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징계는 하나님이 우리를 승리자로 세워가시는 과정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을 경험할 때 이렇게 반응한다.
“내가 실패했구나”, “하나님이 나를 벌하시는구나”, “나는 패배자야.” 이는 고난을 패배의 징표로 오해하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성경은 고난을 전혀 다른 차원에서 해석한다. 고난과 징계는 패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승리자로 세워가시는 과정이다.
거짓자아는 언제나 모든 상황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고난을 당할 때도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 진노와 실망의 표현으로 받아들인다. 이때 신자는 하나님 앞에서 움츠러들고 자신감을 잃으며, 영적 전쟁에 소극적이 된다. 결국 마귀는 이런 허점을 타고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히 12:6)라는 말씀을 근거로 고난을 하나님의 직접적인 징계로 설명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하나님의 본질과 상충된다.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 생명, 하나됨이다. 그분은 직접 고통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을 제거하고 치유하시는 분이다. 예수님의 사역을 보라. 주님은 단 한 번도 교육적 목적으로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신 적이 없다. 오히려 모든 병자를 고치시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셨으며, 고통을 짊어지셨다. 그러므로 고난을 하나님의 형벌로만 이해하는 것은 우리를 자책과 정죄 속에 묶어두어 승리자의 정체성을 잃게 만든다
하나님은 직접 고난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잘못된 선택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를 경험하도록 허용하신다.
이는 아이가 위험한 길을 갈 때 부모가 강제로 막지 않고, 그 결과를 스스로 깨닫도록 허용하는 것과 같다. 자유의지를 가진 혼이 하나님의 말씀 대신 거짓자아의 믿음체계를 따르면 하나님의 보호막에서 멀어지게 된다. 이는 태양에서 멀어질수록 자연스럽게 어둠과 추위가 밀려오는 원리와 같다. 그러나 욥의 사례처럼 하나님은 그 허용에도 분명한 경계를 두신다.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욥 1:12). 결국 마귀의 공격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제한적으로만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 다시 그분의 생명과 축복을 누리기를 원하신다. 고난을 통해 혼이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깨닫고 다시 하나님께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 없는 형벌이 아니라, 하나님과 멀어진 자녀를 다시 품으시는 사랑의 훈련이다. 고난이 올 때 우리는 “나는 버림받았다”가 아니라, “나는 회복으로 초대받았다”라고 해석해야 한다.
히브리서 12장에 ‘징계’로 번역된 헬라어 ‘파이데이아’는 단순히 처벌을 뜻하지 않는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에서 자녀를 교육하고 훈련하여 미래의 지도자로 세우는 전인적 양육을 가리키는 단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징계는 우리가 자녀가 아니기 때문에 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자녀이기 때문에 받는 것이다. 이는 더 큰 승리를 준비하는 훈련이다. 히브리서 12장 7-8절은 이를 분명히 한다.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올림픽 선수를 훈련시키는 코치를 생각해보라.
코치는 선수를 괴롭히려는 마음에서 혹독한 훈련을 시키는 것이 아니다. 금메달리스트로 만들기 위해 힘겨운 과정을 허용하는 것이다. 훈련이 힘들다고 선수가 무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승리를 위한 준비 단계다. 신자가 겪는 고난 역시 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킹덤빌더로 세워가고 계신다는 증거다.
고난의 참된 목적은 우리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진정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평안할 때는 거짓자아로 살면서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그러나 고난 속에서는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왔는지가 선명히 드러난다. 이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더 많은 노력이나 자기 정죄가 아니라, 거짓자아를 포기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아를 발견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12장 10절은 고난의 목적을 이렇게 말한다.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여기서 ‘거룩하심에 참여한다’는 것은 단순히 도덕적 완결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을 나타내는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12장 11절은 그 결과를 약속한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핵심은 '후에' 있다.
고난은 그 순간이 아니라 결과로 판단해야 한다. 그 열매는 의와 평강이다.
야고보서 1장 2-4절도 동일한 관점을 전한다.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기쁘게 여기라’는 것은 고통 자체를 즐기라는 말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완전한 승리자로 세워질 것을 미리 기뻐하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고난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에 이 과정을 허용하신다. 나는 이미 승리자이며, 이 과정을 통해 더욱 강한 승리자가 될 것이다. 나는 패배하지 않는다!” 고난과 징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승리자가 승리자로 살아가는 비결이다. 고난을 사랑의 훈련으로 이해할 때, 우리는 영적 전쟁에서 진정한 승리를 경험하게 된다.
- 영적 전쟁, 손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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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전쟁에 임하는 킹덤빌더의 자세.우리는 승리를 쟁취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이미 쟁취한 승리를 선포하러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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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히브리서 12:10~11
† 기도
하나님, 고난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영적 전쟁의 승리자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그리스도 안에서 진짜 나를 발견하고 새롭게 나아갈 수 있는 힘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 적용과 결단
고난의 시간을 통해 믿음으로 더욱 성장하기로 결단합니다.
출처 : 갓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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