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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과 신앙

나는 정말 구원 받았는가?

by 카이로 B.G.PARK 2024.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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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구원받은 자인가?

 

 

구원의 서정의 첫째인 소명은 ‘외적 소명’과 ‘내적 소명’으로 구분됩니다

외적 소명은 모든 사람에게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아와 구원을 얻으라고 하는 공개적 부르심입니다.

 

어떻게 부르느냐 하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요 6:44) 이렇게 주님께 초청하는 것으로, 목사의 설교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제가 청교도들을 연구하면서 깜짝 놀랐는데 이분들은 정말 담대합니다.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첫째, ‘기록된 성경’이고, 둘째, ‘기록을 선포하는 설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중에서 성령의 역사는 목사의 설교를 통해 훨씬 많이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상식을 깨는 말 아닌가요?

목사의 설교에는 오류가 있고, 목사의 설교는 인간의 말이고, 정말 때묻지 않은 성경을 통해서 참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리라고 생각하는데 청교도들은 오히려 우리가 혼자 성경을 읽을 때보다 설교를 들을 때 성령의 역사가 더 잘 나타난다고 표현합니다. 사실 구원의 서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이 핵심인데 그 첫 번째인 소명이 외적 소명으로부터 시작하며 그것이 목사의 설교라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둘째, 내적 소명입니다.

내적 소명은 ‘유효적 소명’으로 불리며 성령에 의하여 이루어집니다. 내적 소명은 성도가 설교를 듣고 그 설교에 동의와 기쁨으로 자발적으로 반응하도록 하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께서 그 사람의 마음을 뒤집어서 그 말씀이 참으로 옳다고 느끼고, 그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강력히 일으키는 것으로 이 내적 소명이 없으면 외적 소명은 효력을 발생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그 말씀에 동의하지 않고 아무런 감화 감동이 없는 설교라면 백날 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성령에 의한 이 유효적 소명을 듣는 사람은 말씀이 맞다고 하면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습니다. 자신이 교만할 것 없고 잘난 것 없다고 자기를 한탄하는 것이 바로 내적 소명을 받은 자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내적 소명을 받는 사람은 정말 겸손해지고, 낮아지고, 심령이 가난해집니다. 그렇게 만드는 설교가 진짜 설교입니다

 

소명 다음은 ‘중생’입니다.

“중생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성령의 비밀한 사역으로 개인의 전 인격에 영향을 미칩니다. 중생은 우리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첫 번째 요건입니다.” 이것이 중생을 설명하는 신학적 언어입니다. 그러나 중생을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단적으로 중생은 “소명의 내적 효과”를 말합니다. 우리가 설교를 듣고 그 설교에 합당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맞다, 맞다, 내가 하나님께 죄인이구나, 내가 사람들 앞에 죄인이다’ 이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소명이 있습니다.

 소명에는 외적 소명과 내적 소명이 있습니다. 외적 소명은 내적 소명에 연결되어 있으며 내적 소명은 다시 중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내적 소명으로 말미암아 ‘아, 그렇구나, 그렇구나’라고 하는 것이 중생입니다. 그래서 중생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습니다. 살아갈 때 항상 낮아짐에 처하고, 하나님께 죄송함으로, 교우들에게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생한 자의 모습입니다.

 

정리하면 구원의 시작은 전파하는 자의 전파로부터 시작됩니다. 전파하는 목회자가 없이 어떻게 믿겠습니까? 전파할 때 그 진리의 말씀에 동의가 되어 마음에 합당하게 반응한 자는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중생입니다. 따라서 목회자는 말할 수 없는 부담감을 안고 살아갑니다. 목사의 설교를 통하여 그 사람의 영혼이 구원을 받기도 하고 구원을 받지 않기도 하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는 강대상에서 그냥 말을 하거나 강론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는 한 사람의 영혼을 하나님께 이끌 수 있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정말 말할 수 없는 영광과 말할 수 없는 자부심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설교 말씀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존재를 포기하고, 오직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내면의 유효함이 나타나는 시간, 우리가 중생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설교 시간입니다. 말씀을 따라서 그 말씀에 합당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충만해야 중생한 사람입니다. 

 

우리 자신이 중생의 길에 있는지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우리가 ‘외적 소명’인 설교를 듣고 내 마음에 감동을 받는 ‘내적 소명’을 받았는지 체크해보십시오. 우리가 말씀에 합당한 반응을 하는지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말씀에 합당한 반응이란 나의 전적 타락에 대한 고백이요, 나의 죄됨에 대한 겸손입니다. 나의 의에 대한 자부심이 아닙니다. 이것이 ‘중생’입니다.

 

너무 쉽고 간단하지 않습니까?

내가 구원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이 기준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검증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서정은 철저히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서정에 들어가 있으면 구원이요, 우리가 구원의 서정 밖에 있다면 영적으로 매우 위험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혹시 설교를 들으면 재미가 없고 심지어 화가 나십니까?

그렇다면 기도하십시오. 예수를 주(主)로 시인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십니다. 말씀에 무릎 꿇게 해주시고 말씀에 동의하게 되는 은혜를 달라고, 구원의 서정 안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기도한다는 것 자체가 구원받은 자의 특징입니다. 

 

- 황금사슬, 정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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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 로마서 10:13~15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사랑하여 주시고 믿음의 자녀로 불러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게 하여주시고 더욱 낮아져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빛의 자녀들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아멘

 

† 적용과 결단

죄인임을 깊이 깨달아 주님의 사랑을 묵상하여 그 사랑으로 인해 더 겸손하고 낮아지며 가난한 심령으로 하루를 살아가기 원합니다

 

출처 : 갓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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