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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기술 발달한 한국인데 왜 '대형 사고'가 끊이지 않을까

by 카이로 B.G.PARK 2024.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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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소방 당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고용노동부 등으로 구성된 합동감식단이 25일 오전 경기 화성시 리튬전지 제조 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 현장에서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24일 경기 화성의 일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총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한국 화학업계에서 발생한 사고 중 역대 가장 큰 피해를 남긴 참사로 기록되게 됐다.

사망자 상당수가 외국인인 데다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신이 훼손된 상황이 이번 사고가 얼마나 심각한 것이지를 가늠케 했다.

배터리 1개로 시작된 불…. 피해 컸던 이유는?

25일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9개 기관은 화재 현장 합동 감식을 벌였다.

작업장 내부 CCTV 등에 따르면 이번 화재는 1개의 리튬 배터리 폭발에서 시작됐다.

첫 발화가 일어난 지 불과 30초 만에 다른 배터리까지 세 차례 폭발이 이어지고 곧이어 검은 연기가 화면을 뒤덮었다.

초기 진화에 실패하면서 유독가스까지 뿜어져 나왔고, 대피 시간을 놓친 희생자들은 그대로 고립됐다.

합동 감식에 참여한 김수영 국립소방연구원 박사는 "배터리가 한 곳에 몰리지 않고, 곳곳에 널려 있었다"라며 "최초 발화한 배터리가 수 미터를 튕겨 나가 다른 배터리를 충격하고 이에 따라 연쇄적으로 불길이 옮겨붙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렇게 리튬 배터리 화재는 보통 열 폭주 현상이 원인이 돼 나타난다. 고온에서 불씨가 폭발하는 현상이다. 양극, 음극, 분리막, 전해액 등으로 구성된 배터리에서 양극과 음극이 접촉하지 않도록 막는 분리막이 손상되면 생긴다.

특히 불이 난 아리셀 공장 3동 건물은 샌드위치 패널 구조로, 가연성 내장재가 타면서 많은 유독가스도 발생했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 출처,중앙긴급구조통제단

사진 설명,화성 리튬 배터리 공장 화재의 첫 발화 당시 모습을 중앙긴급구조통제단에서 25일 공개했다. 사진은 화재 발화 당시 시간대별 CCTV 화면 모습

대형사고 취약처, 한국

한국에서는 산업현장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2000년대 이후로 가장 많은 근로자 목숨을 앗아간 참사는 2008년 1월 7일 일어난 경기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였다. 당시 사고로 40명이 목숨을 잃었다.

2020년 4월29일 이천에서 일어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사고’는 38명의 사망자와 12명의 부상자를 남긴 대형 참사였다.

석 달 뒤인 7월21일 경기 용인 양지SLC 물류센터에서 큰불이 나 5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2021년 12월13일 여수산업단지에선 석유화학제품 제조공장에서 불이 나 작업자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액체 화학물질을 저장한 고정식 탱크에서 폭발과 함께 화재가 시작됐다.

이듬해 여수산단 내 여천NCC 공장에서는 열교환기 시험 가동 중 폭발이 일어나면서 4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치는 일이 있었다.

계속된 사고에 정부가 손을 놓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22년 노동부는 건설 현장 현장관리자와 화재감시자를 대상으로 화재・폭발 예방 교육을 이수하도록 현장 기술 지도를 강화했다.

또 '중대재해처벌법'을 도입해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가 안전 확보 의무 등 조치를 소홀히 해 산업재해가 발생해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를 처벌하도록 했다.

하지만 산업현장에서 화재를 비롯해 각종 사고로 생명이 쓰러지는 일들은 줄지 않았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공개한 ‘1분기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을 보면, 올해 1∼3월 재해조사 대상인 사고 사망 노동자는 138명. 전년 동기(128명) 대비 10명(7.8%) 늘어난 수치다. 사고 건수로는 136건으로 12건(9.7%)이 증가했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의 산업 재해 사망률은 월등히 높다. 근로자 만 명 당 사망자를 나타내는 '사고 사망 만인율'을 살펴보면(2022년 기준) 한국은 0.4로 영국의 14배, 독일과 일본의 3.5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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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만 하면 자꾸 발생...이유는?

지난 15년간 발생한 대형 화재 사고

 

  • 2008년 1월 7일= 경기 이천시 호법면 유산리 물류창고 화재(사망 40명)
  • 2010년 11월12일=경북 포항 인덕노인요양센터 화재 (사망 10명, 부상 17명)
  • 2014년 5월28일= 전남 장성 효사랑요양병원(사망 21명, 부상 8명)
  • 2017년 12월21일= 충북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센터(사망 29명, 부상 40명)
  • 2018년 1월26일=경남 밀양 세종병원(사망 46명, 부상 109명)
  • 2019년 9월24일=경기 김포시 풍무동 김포요양병원(2명 사망, 부상 44명)
  • 2020년 4월29일=경기 이천시 모가면 소고리 물류창고 공사현장(사망 38명)
  • 2020년 3월 7일 = 대구 중구 목욕탕 화재(3명 사망, 88명 부상)
  • 2020년 4월 29일 = 경기 이천 물류창고 공사 현장 화재(38명 사망, 10명 부상)
  • 2020년 7월 10일 = 전남 고흥 윤호21병원 화재(4명 사망, 26명 부상)
  • 2020년 7월 21일 = 경기 용인 SLC 물류창고 화재(5명 사망, 8명 부상)
  • 2021년 6월 17일 = 경기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소방관 1명 사망)
  • 2022년 1월 5일 = 경기 평택 냉동창고 신축 공사 현장 화재(소방관 3명 사망)
  • 2022년 6월 9일 = 대구 범어동 변호사사무실 빌딩 방화 화재(7명 사망, 50명 부상)
  • 2022년 8월 5일 = 경기 이천 병원 건물 화재(5명 사망, 42명 부상)
  • 2022년 9월 26일 = 대전 유성구 현대 프리미엄아울렛 화재(7명 사망, 1명 부상)
  • 2022년 12월 29일 = 경기 과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5명 사망, 41명 부상)

전문가들은 이번 화성 화재가 큰 대형 사고가 됐는지에 대한 원인으로 '현장 대응 사각지대'를 지적했다.

한국보건안전단체총연합회 회장인 정혜선 가톨릭대 보건의료경영대학원 교수는 메뉴얼이 있었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된 훈련이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사고 희생자들은 출구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쪽인 내부로 피신해 고립되는 바람에 집단적 참사가 이뤄졌다"며 "중대재해처벌법에는 급박한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매뉴얼을 만들고 6개월에 1회 이상 점검하게 되어있지만, 평소 대비가 제대로 안 이뤄진 것으로 추측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형식적인 안전 점검과 소방 점검은 오히려 역효과를 발생시킨다"며 "리튬 전지는 물에 닿으면 크게 폭발하는데 화재 발생 초기 모래를 사용하지 않고 소화기를 쓰려고 한 것은 평소에 안전대책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정 교수는 "대부분의 사고는 항상 유사한 사고가 반복돼 나타나는 점"을 강조했다.

"2022년에 카카오 데이터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당시, 인명 피해는 없었지 화재 진압이 어려웠단 점을 인지했음에도 법령 개정이나 제도 정비와 같은 차원의 대응이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신속하게 리튬 및 유사 위험에 대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이번 아리셀 공장 화재 사건의 경우, 화재 당일인 24일보다 이틀 앞선 22일 오후에도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다른 건물에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소방공무원으로 20년 넘게 화재 진압을 했었던 손원배 초당대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자체 대비 능력이 부족해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손 교수는 "공장 화재의 경우 평소 안전관리시스템 붕괴에 대해 자체 대응능력 부재로 사업장이 완전히 소실되고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례가 너무 많다"며 "단 한 번이라도 화재 시 근로자들이 자체 대응에 필요한 최소한의 교육만 받아쓰면 생명을 잃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현장 근로자 대부분이 외국인으로 채워지고 있지만, 이를 대비한 실효성 있는 안전 정책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 산업재해는 2017년 6302건에서 2022년 8286건으로 5년 새 31% 늘었다. 산재로 사망한 외국인 근로자는 2016년 이후 한 번도 연간 100명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다.

산업안전보건법 제37조는,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주는 안전보건표지를 해당 근로자의 모국어로 작성하도록 규정한다. 안전보건공단도 고용허가제(E-9) 송출국 16개국 언어로 제작된 각종 안내문을 배포하고 있다.

하지만 중소 영세업체에서 제대로 안전교육이 이뤄지는지 점검하기는 쉽지 않다. 아리셀처럼 일용직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는 경우에는 상황이 더욱 열악할 수밖에 없다.

손 교수는 "짧은 시간에 급격한 연소 확대가 있는 상황에서 내부구조 미숙지, 언어 소통 부재 등 복합적 원인이 대형 사고를 키운다"고 했다.

정혜선 교수 역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안전대책 지원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외국인노동자 지원센터에서 언어교육, 안전교육 등이 이뤄져야 하지만 금년에 예산이 전액 삭감돼 지원이 제대로 있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일터 사망 사고를 줄이기 위해선 사후 처벌보다 예방에 중점을 둔 법과 정책 마련이 중요하다고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지만 실제 처벌받은 사업주가 2명에 불과하는 등 보완해야 할 점도 많다는 지적이다.

손 교수는 "법령 준수를 위해 안전 우선주의를 채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현장 공정 등 작업장에서 안전 확인, 위해 요인 제거 등 인명피해를 일정 부분 감소시키는 기능을 한다"면서도 "작업 현장에서는 빨리빨리 문화와 안전불감증이 팽배해 있어 향후 사고 후 처벌보다는 사전 행정감독을 강화하는 방향의 법과 제도적으로 보완적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제조업체 아리셀의 박순관 대표 등 관계자 3명은 산업안전보건법 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26일 노동 당국에 입건됐다.

민길수 고용노동부 지역사고수습본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향후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해 법 위반 사항이 확인되면 엄중히 조치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경찰은 25일 박 대표 등 관계자 3명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형사 입건했다.

아리셀 공장에는 이날 오전 9시부로 전면작업중지명령이 내려졌다. 이는 공장 내 동종·유사 재해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출처 : BBC뉴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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