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위해 싸울 때, 진정 승리할 수 있다
임진왜란,
왜군의 공격으로 조선의 운명이
꺼져가는 등불처럼 스러져 가고 있을 때,
조선 끝자락 해안에는
이 민족을 자기 목숨보다 더 소중히 생각한 이가 있었다
“아직 신에게는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
거기에 버려진 판옥선 한 척까지 총 열세 척.
잘 정비된 왜선 수백 척이 밀려 들어오는데
고작 판옥선 열세 척으로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죽이고 빼앗고 약탈하는 전쟁 한 가운데에 있던
이순신 장군의 전쟁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해전으로 남았다.
‘열세 척의 배와 두려워 떠는 군사들을 데리고
어떻게 전쟁에서 이겼을까?’
내가 정말 알고 싶은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삶을 다룬 책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소개된다.
결전을 앞둔 어느 날,
이순신 장군이 그의 아들과 침묵의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오랜 적막을 깨고 아들이 아버지께 물었다.
“아버지, 두려움에 떠는 군사들을 데리고
어떻게 전쟁을 할 수 있습니까?”
이윽고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그 사람이 가진 것 이상의 용맹을 바랄 수 있다.”
두려움을 용기로.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아들이 묻자 아버지가 대답했다.
“내가 죽으면 된다.
내가 죽으면 그들의 두려움은 용기로 바뀐다.”
이 말에 내 모든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장군은 살려고 전쟁하지 않았다.
죽으려고 전쟁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 마태복음 10장 39절
우리가 잘 아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죽기 위해 전쟁한 자의 어깨에는
사랑하는 가족보다 그의 민족, 조선의 백성이 있었다.
자신의 패배가 조선의 패배로 이어진다는
경고 어린 심장의 소리가
한 장군으로 하여금 한 나라를 살리게 했다.
장군은 군사들을 앞서 보내고
후방에서 지휘하지 않았다.
늘 선두에서 빗발치는 왜군의 총탄을
가장 먼저 막아냈다.
군사들이 공포와 두려움으로 주춤할 때,
장군이 탄 배는 죽음의 적진으로 돌격했다.
그는 죽음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죽음을 이긴 전쟁’이었다.
“나의 죽음이 내 군사들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
살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죽기 위한 전쟁.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셔서
죽음으로 뜻을 이루셨다.
한 민족을 살리기 위한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닌
온 인류를 살리기 위해 죽어야만 했던 분,
제자들이 두려워 벌벌 떨며
당신을 버리고 뿔뿔이 도망쳤을 때
그들의 두려움을 믿음의 용기로 바꾸신 분,
바로 예수님이시다.
베드로가 힘 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 마가복음 14장 31절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불과 몇 시간 전,
‘예수님과 함께 죽겠노라’ 고백한 베드로와 제자들은
십자가 앞에 서신 예수님에게서 비겁하게 도망쳤다.
사람이 그렇다.
환경과 상황 앞에 늘 마음이 바뀐다.
우리 안에 있는 마음은 늘 우리를
편리하고 이익이 있는 쪽으로 이끈다.
의리도 정의도 최소한의 양심도,
이 마음을 이기지 못한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나는 매일 베드로의 고백을 하고 있다.
“주님과 함께 땅끝까지 가겠습니다.
제가 죽을지언정 주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이 고백은 언제 그랬냐는 듯 내 등 뒤로 숨고
당장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버리고 만다.
나도 베드로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주께 등 돌릴 수 있는 사람이다. 이것이 두렵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셨다.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 요한복음 13장 36절
예수님이 어린양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그분의 몸을
우리에게 다 쏟아부어 주셨지만,
제자들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후에는”, 곧
“내가 부활의 능력을 보인 후에는
네가 나를 따라오리라” 말씀하셨다.
이것이 부활의 능력이다.
부활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가장 위대한 역사다. 이를 간과하면
복음의 가장 큰 핵심을 잃어버리게 된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에야
진정한 제자로, 하나님의 군사로 변모했다.
3년간 제자 껍데기로 살던 그들의 마음에
드디어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들어오셨다.
전쟁은 아무나 할 수 없다.
훈련되고 준비된 사람들만 참여할 수 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훈련하고 준비시키셨다.
이들의 연약함도, 다가올 미래의 일도 아셨다.
그래서 그들을 하나님의 군사요, 사도로 세우기 위해
예수님의 부활로 마침표를 찍으셨다.
그분의 부활을 만난 모든 사람은
이 치열한 전쟁에 자기 몸을 기꺼이 내던졌다.
그리고 장렬하게 전사했다. 하지만 죽지 않았다.
오직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할 뿐이었다.
존경하는 믿음의 선배,
손양원 목사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핍박과 고난의 길을 지나며 발발한 한국 전쟁의 때,
모두가 피난을 가야 한다고 할 때
손 목사님은 자신의 양 떼가 있는
여수 애양원에 남아 나환자들을 돌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안타까워하는 이들을 향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 기독교는 이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한 종교가 아니고,
잘 죽기 위한 종교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이런 고백을 할 수 없다.
살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죽기 위한 전쟁.
전쟁은 이걸 아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 내가 가지 않으면 아무도 가지 않는다, 이시온
† 말씀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 마태복음 10:39
† 기도
우리를 살리시려 이 땅에 죽으러 오신 예수님,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제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십니다. 내 안위만 생각하는 부끄러운 인생이 아닌 부활의 능력을 힘입어 이 땅에서 잘 죽는 자랑스러운 주님의 군사로 살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오늘 하루도 부활의 능력 의지하여 주님과 땅끝까지 가겠다는 마음과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을 떠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기 원합니다
출처 : 갓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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