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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속 숨은 과학 찾기 (27) 서울을 떠받치고 있었고, 떠받치고 있는 연탄
서울교통공사가 발표한 2025년 2월에 발표한 자료를 보면 서울 지하철 1호선에서 8호선까지의 지하철 노선이 2024년 한 해 동안 태운 승객의 숫자, 그러니까 수송 인원은 24억 명에 달했다고 한다. 지구 전체의 인구가 80억 명 정도니까 그 3분의 1 정도에 달하는 엄청난 숫자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실어 날라야 하는 것이 지하철인 만큼 열차를 관리하고 정비하는 차량 기지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서울 시내에 위치한 전철 차량 기지들을 보다 보면 하나 좀 특이한 곳이 눈에 뜨인다. 바로 동대문구와 성북구 사이 즈음에 있는 이문차량기지라는 곳이다. 이 정도 위치면 서울 중심가에 상당히 가까운 지역이다. 그러면서도 이문차량기지는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으며 많은 열차가 드나들 수 있는 제대로 된 차량 기지로서 형태를 잘 갖추고 있다. 면면을 보면 건설된 지 꽤나 오래 되어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도대체 이런 위치에 이런 차량 기지가 왜 이렇게 오래 동안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일까? 보통 차량 기지들은 부지가 넓은 외곽 지역에 건설되는 일이 많다. 그게 아니라면 승객이 많이 드나들어 열차가 많이 찾아 오는 규모가 큰 역사 근처에 설치하기도 한다. 그래야 효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문차량기지는 그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서울 시내에 위치한 전철 차량 기지들을 보다 보면 하나 좀 특이한 곳이 눈에 뜨인다. 바로 동대문구와 성북구 사이 즈음에 있는 이문차량기지라는 곳이다. 이 정도 위치면 서울 중심가에 상당히 가까운 지역이다. 그러면서도 이문차량기지는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으며 많은 열차가 드나들 수 있는 제대로 된 차량 기지로서 형태를 잘 갖추고 있다. 면면을 보면 건설된 지 꽤나 오래 되어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도대체 이런 위치에 이런 차량 기지가 왜 이렇게 오래 동안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일까? 보통 차량 기지들은 부지가 넓은 외곽 지역에 건설되는 일이 많다. 그게 아니라면 승객이 많이 드나들어 열차가 많이 찾아 오는 규모가 큰 역사 근처에 설치하기도 한다. 그래야 효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문차량기지는 그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아 보인다.
이문차량기지가 지금의 위치에 있는 진짜 이유는 연탄 때문이다. 과거 이문차량기지는 이문역이라는 철도역이었고, 이 철도역을 통해 전국의 석탄이 서울로 공급 되었다. 지금이야 서울 시내에서 석탄을 쓸 일이 그리 많겠나 싶지만 20세기 동안 가정에서 추운 날씨를 버티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한 연료가 바로 석탄을 가공해서 만드는 연탄이었다. 천 만 서울 시민이 생활하는 도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연탄이 필요했고 그 연탄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원료인 석탄을 서울 중심부에 가까운 곳까지 최대한 많이 실어 와야 했다. 그래서 바로 지금의 이문차량기지 위치에 석탄 실어오는 역을 만들었고 그것이 지금은 차량기지로 변한 것이다.
연탄은 한 동안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생활 필수품이었다. 연탄을 쓰는 사람이 줄어 든 지금도 연탄 구이 등으로 고기를 구워 먹는 가게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제품이다. 그래서 별 대수롭지 않은 물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의외로 연탄은 사연이 많고 신기한 점도 많은 독특한 물건이다.
혹시 연탄을 영어로 무엇이라고 하는 지 아는가? 영어 사전을 찾아 보면 ‘briquette’ 같은 단어가 나와 있다. 그렇지만 막상 briquette이라고 되어 있는 제품을 영어권에서 찾아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연탄과 전혀 다르게 생긴 제품이 나온다. briquette은 석탄 가루를 뭉치고 굳혀서 만든 연료를 두루두루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연탄은 그 중에 동그랗게 만들어서 구멍을 뚫어 놓은 한 가지 독특한 제품을 부르는 말이다. 영어권에서 briquette이라고 해서 판매되고 있는 제품을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조개탄 등의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그러면 연탄은 영어로 무엇일까? 엄밀히 말해 보자면 영어에 연탄이라는 말은 없다. 왜냐하면 연탄이라는 제품이 대중화되어서 널리 쓰이던 곳은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몇몇 나라 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프랑스 사람들이 양고기를 연탄 구이로 구워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은 없을 것이다. 미국 텍사스 사람들이 바베큐를 할 때 연탄을 쓴다는 말도 들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연탄 구이가 한국의 독특한 문화가 된 것은 연탄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과 값싼 국산 석탄을 이용해서 난방을 해야 했던 상황이 20세기 중반에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연탄은 프랑스의 파리나 미국의 뉴욕이 아닌 한국의 서울에서 유행한, 서울을 상징하는 연료였다.
연탄은 한 동안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생활 필수품이었다. 연탄을 쓰는 사람이 줄어 든 지금도 연탄 구이 등으로 고기를 구워 먹는 가게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제품이다. 그래서 별 대수롭지 않은 물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의외로 연탄은 사연이 많고 신기한 점도 많은 독특한 물건이다.
혹시 연탄을 영어로 무엇이라고 하는 지 아는가? 영어 사전을 찾아 보면 ‘briquette’ 같은 단어가 나와 있다. 그렇지만 막상 briquette이라고 되어 있는 제품을 영어권에서 찾아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연탄과 전혀 다르게 생긴 제품이 나온다. briquette은 석탄 가루를 뭉치고 굳혀서 만든 연료를 두루두루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연탄은 그 중에 동그랗게 만들어서 구멍을 뚫어 놓은 한 가지 독특한 제품을 부르는 말이다. 영어권에서 briquette이라고 해서 판매되고 있는 제품을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조개탄 등의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그러면 연탄은 영어로 무엇일까? 엄밀히 말해 보자면 영어에 연탄이라는 말은 없다. 왜냐하면 연탄이라는 제품이 대중화되어서 널리 쓰이던 곳은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몇몇 나라 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프랑스 사람들이 양고기를 연탄 구이로 구워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은 없을 것이다. 미국 텍사스 사람들이 바베큐를 할 때 연탄을 쓴다는 말도 들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연탄 구이가 한국의 독특한 문화가 된 것은 연탄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과 값싼 국산 석탄을 이용해서 난방을 해야 했던 상황이 20세기 중반에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연탄은 프랑스의 파리나 미국의 뉴욕이 아닌 한국의 서울에서 유행한, 서울을 상징하는 연료였다.

서울을 상징하는 연료, 연탄에 구멍이 뚫린 이유
연탄의 가장 큰 특징은 아래 위로 여러 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연탄을 다른 말로는 구멍탄이라고도 부른다. 구멍탄이라는 단어는 대한민국 석탄산업법의 시행령 제2조에도 등장하는 정식 용어다. 그리고 <아기공룡 둘리>에 등장한 노래 가사로도 유명한 구공탄이라는 단어도 구멍탄이라는 말이 변형되어 생긴 말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구멍이 아홉 개라서 구공탄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기는 하지만 구멍이 아홉 개 뚫린 연탄이 널리 사용된 적은 없으며 지금 주로 사용되는 연탄에는 보통 22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과거에는 19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 연탄이 거래된 적도 있는데 그 때문에 구공탄이라는 말이 구멍 개수와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수는 있겠다.
연탄에 구멍이 뚫려 있으면 연탄 속 깊은 곳에도 공기가 닿을 수 있다. 즉 공기 속의 산소와 연탄이 더 많이 닿게 된다. 불이라는 것은 연료가 산소와 빠르게 반응하며 열과 빛을 내뿜는 현상을 말한다. 흔히 옛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불과 물은 정반대가 아니다. 물은 물이라고 하는 물질 하나를 부르는 이름일 뿐이지만, 과학적으로 정확히 따져 보면 불은 불이라는 물질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무슨 물질이든 산소와 반응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 상황을 불이라고 부른다. 그런 만큼 연탄에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으면 산소와 닿는 넓이가 늘어나 그만큼 불이 더 잘 붙고 더 잘 타게 된다. 이것은 공학과 과학 여러 분야에서 널리 적용되는 넓이 대 부피 비(surface area to volume ratio)의 원리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개발된 연탄을 만들어 쓰는 기술이 한반도에 들어와 소량 사용되었던 것이 20세기 초다. 그 무렵만 해도 우리에게 친숙한 연탄 모습 뿐만 아니라 벽돌 모양으로 만든 석탄 덩어리에 구멍을 두 개 쯤 뚫어 놓은 형태의 연료도 자주 쓰였던 것 같다. 그러다가 광복 후 20세기 중반에 접어 들면서 본격적으로 우리가 친숙하게 여기는 연탄이 제대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전설처럼 도는 이야기 중에는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 모여든 피난민들 사이에 누군가 석탄 부스러기를 물로 반죽해서 뭉쳐서 사용하는 것을 보고 연탄이 요긴하다는 생각이 한결 더 빠르게 퍼졌다는 말도 있다.
연탄에 구멍이 뚫려 있으면 연탄 속 깊은 곳에도 공기가 닿을 수 있다. 즉 공기 속의 산소와 연탄이 더 많이 닿게 된다. 불이라는 것은 연료가 산소와 빠르게 반응하며 열과 빛을 내뿜는 현상을 말한다. 흔히 옛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불과 물은 정반대가 아니다. 물은 물이라고 하는 물질 하나를 부르는 이름일 뿐이지만, 과학적으로 정확히 따져 보면 불은 불이라는 물질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무슨 물질이든 산소와 반응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 상황을 불이라고 부른다. 그런 만큼 연탄에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으면 산소와 닿는 넓이가 늘어나 그만큼 불이 더 잘 붙고 더 잘 타게 된다. 이것은 공학과 과학 여러 분야에서 널리 적용되는 넓이 대 부피 비(surface area to volume ratio)의 원리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개발된 연탄을 만들어 쓰는 기술이 한반도에 들어와 소량 사용되었던 것이 20세기 초다. 그 무렵만 해도 우리에게 친숙한 연탄 모습 뿐만 아니라 벽돌 모양으로 만든 석탄 덩어리에 구멍을 두 개 쯤 뚫어 놓은 형태의 연료도 자주 쓰였던 것 같다. 그러다가 광복 후 20세기 중반에 접어 들면서 본격적으로 우리가 친숙하게 여기는 연탄이 제대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전설처럼 도는 이야기 중에는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 모여든 피난민들 사이에 누군가 석탄 부스러기를 물로 반죽해서 뭉쳐서 사용하는 것을 보고 연탄이 요긴하다는 생각이 한결 더 빠르게 퍼졌다는 말도 있다.

서울 시내에서 하루 천만 장의 연탄이 필요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루에 연탄 천만 장 쓰던 서울, 마지막 공장도 역사 속으로…
이후 정부에서 숲 생태계를 보호하고 나무를 가꾸기 위해서 장작을 잘라 쓰는 것을 대대적으로 단속하면서 사람들은 나무 장작이 아닌 다른 국산 연료인 석탄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서울에서 가정용으로 특히 인기 있었던 연료가 연탄이었다.
석탄 가루를 강한 압력으로 눌러 찍어 내는 방식으로 제조하는 것이 연탄을 만드는 기본 방법이었는데 더 잘 굳히기 위해 흙이나 톱밥 또는 석회석 계통의 성분을 섞어 반죽해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만든 연탄은 운반하기도 편리하고 쌓아 놓기도 편리했으며 적당한 정도로 타들어 가기에 집을 난방하기에도 유리했다. 게다가 다 태우고 나면 모양 그대로 굳어 있는 연탄재가 남기 때문에 재를 처리하기에도 유리한 점이 있었다.
그 덕분에 20세기 중반 이후 서울의 동대문구와 성북구 사이에 있는 이문동에서 석관동에 이르는 지역에 연탄 공장들이 여러 곳 활발히 가동되었다. 주요 탄광에서 캐낸 석탄이 철도를 통해 이문역으로 배달 되면 인근에 있던 예닐곱 개의 석탄 공장이 쉴 새 없이 돌아 가며 그 석탄으로 연탄을 찍어 내 서울 곳곳으로 판매했다.
천만 서울 시민이 겨울을 나기 위해 서울 시내에는 하루 천 만 장의 연탄이 필요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장 한 군데에서 하루 200만 장이나 되는 연탄을 고속으로 만들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1초에 스물 세 장의 연탄을 찍어내는 속도로 24시간 쉬지 않고 계속 공장이 돌아갔다는 뜻이다.
연탄 사용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는 1980년대 후반 무렵인데, 정성군에서 발간한 <정선군 석탄산업사>라는 자료를 보면 1988년에는 전국 가구의 77.8%가 연탄으로 난방을 했다고 한다. 국민의 8할이 연탄을 썼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후 석유나 천연가스 같은 더 편리하고 더 깨끗한 연료가 인기를 얻으면서 빠르게 연탄 사용은 줄어 들었다. 특히 서울 같은 대도시 지역에는 천연가스를 주원료로 만드는 도시가스가 배관망을 통해 널리 보급되자 난방 목적으로 연탄을 쓰는 곳은 급감했다. 그래서 1988년에서 불과 12년이 지난 2000년에 이미 연탄 사용 가구의 비율은 1.5%에 지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결국 그토록 성업했던 서울의 연탄 공장들도 같이 줄어 들었다. 이문동 지역에서 1968년 이후 56년 동안 운영되고 있던 서울의 마지막 연탄 공장 역시 2024년 7월에 최후의 연탄을 생산한 뒤에 문을 닫았다.
석탄 가루를 강한 압력으로 눌러 찍어 내는 방식으로 제조하는 것이 연탄을 만드는 기본 방법이었는데 더 잘 굳히기 위해 흙이나 톱밥 또는 석회석 계통의 성분을 섞어 반죽해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만든 연탄은 운반하기도 편리하고 쌓아 놓기도 편리했으며 적당한 정도로 타들어 가기에 집을 난방하기에도 유리했다. 게다가 다 태우고 나면 모양 그대로 굳어 있는 연탄재가 남기 때문에 재를 처리하기에도 유리한 점이 있었다.
그 덕분에 20세기 중반 이후 서울의 동대문구와 성북구 사이에 있는 이문동에서 석관동에 이르는 지역에 연탄 공장들이 여러 곳 활발히 가동되었다. 주요 탄광에서 캐낸 석탄이 철도를 통해 이문역으로 배달 되면 인근에 있던 예닐곱 개의 석탄 공장이 쉴 새 없이 돌아 가며 그 석탄으로 연탄을 찍어 내 서울 곳곳으로 판매했다.
천만 서울 시민이 겨울을 나기 위해 서울 시내에는 하루 천 만 장의 연탄이 필요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장 한 군데에서 하루 200만 장이나 되는 연탄을 고속으로 만들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1초에 스물 세 장의 연탄을 찍어내는 속도로 24시간 쉬지 않고 계속 공장이 돌아갔다는 뜻이다.
연탄 사용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는 1980년대 후반 무렵인데, 정성군에서 발간한 <정선군 석탄산업사>라는 자료를 보면 1988년에는 전국 가구의 77.8%가 연탄으로 난방을 했다고 한다. 국민의 8할이 연탄을 썼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후 석유나 천연가스 같은 더 편리하고 더 깨끗한 연료가 인기를 얻으면서 빠르게 연탄 사용은 줄어 들었다. 특히 서울 같은 대도시 지역에는 천연가스를 주원료로 만드는 도시가스가 배관망을 통해 널리 보급되자 난방 목적으로 연탄을 쓰는 곳은 급감했다. 그래서 1988년에서 불과 12년이 지난 2000년에 이미 연탄 사용 가구의 비율은 1.5%에 지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결국 그토록 성업했던 서울의 연탄 공장들도 같이 줄어 들었다. 이문동 지역에서 1968년 이후 56년 동안 운영되고 있던 서울의 마지막 연탄 공장 역시 2024년 7월에 최후의 연탄을 생산한 뒤에 문을 닫았다.

한강공원, 올림픽대로 등을 만드는 공사에 대량의 연탄재를 흙 대신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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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남아있는 연탄의 흔적들
그렇지만 여전히 서울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연탄의 흔적이 곳곳에 지금도 남아 있다. 이문차량기지 같은 곳도 그 중 하나다. 그리고 또 하나 대표로 꼽아 볼만한 것이 성토재, 복토재로 사용했던 연탄재다.
성토재는 공사를 할 때 땅을 고르게 하기 위해서 땅에 퍼부어 놓는 흙을 말한다. 복토재는 무엇인가를 묻을 때 그 위를 덮는 흙을 말한다. 그러니까 성토재와 복토재는 곧 흙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세상에 흔하고 널린 게 흙인데 성토재, 복토재를 구하는 것이 뭐 어려울까 싶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의외로 대규모 공사를 하다 보면 그렇게 많은 흙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생긴다. 특히 정확하게 공사를 하기 위해서 일정한 성질을 가진 비슷한 흙이 많이 필요할 때에는 의외로 그렇게 균일한 흙을 대량으로 구하는 것이 어려워서 문제가 될 때가 있다. 예상 밖으로 흙 값 때문에 비용이 올라 고생을 하게 될 때도 있다. 흙을 대량으로 구해 올 곳이 마땅찮은 어려운 서울 같은 대도시 지역에서 공사를 할 때는 가끔 이런 문제는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1982년에서 1986년 사이에 한강 종합 개발을 진행하면서 강변을 정리해 공원과 고수부지를 만들고 올림픽대로를 만드는 공사에 대량의 연탄재를 흙 대신 사용했다. 연탄재는 품질이 균일하면서 흙과 성질이 비슷한 점이 있어 잘만 하면 성토재, 복토재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6백년 만상>이라는 자료에 따르면 한강 공원 부지의 경우 전체에 사용한 400만 ㎥의 성토재 중에 4분의 1인 108만 ㎥ 만큼이 연탄재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서울 시민들이 오늘도 사용하고 있는 강변의 여러 시설물을 지금도 바닥에서 받쳐 주고 있는 것은, 바로 한 세대 전에 천만 시민들의 겨울을 덥혀 주었던 연탄이다.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라는 시 구절은 잘 알려진 편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은 점차 잊히고 있는 연탄의 시대를 기리면서, 여기에 한 마디를 더 보태고 싶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올림픽대로를 떠받쳐 보았느냐’
성토재는 공사를 할 때 땅을 고르게 하기 위해서 땅에 퍼부어 놓는 흙을 말한다. 복토재는 무엇인가를 묻을 때 그 위를 덮는 흙을 말한다. 그러니까 성토재와 복토재는 곧 흙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세상에 흔하고 널린 게 흙인데 성토재, 복토재를 구하는 것이 뭐 어려울까 싶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의외로 대규모 공사를 하다 보면 그렇게 많은 흙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생긴다. 특히 정확하게 공사를 하기 위해서 일정한 성질을 가진 비슷한 흙이 많이 필요할 때에는 의외로 그렇게 균일한 흙을 대량으로 구하는 것이 어려워서 문제가 될 때가 있다. 예상 밖으로 흙 값 때문에 비용이 올라 고생을 하게 될 때도 있다. 흙을 대량으로 구해 올 곳이 마땅찮은 어려운 서울 같은 대도시 지역에서 공사를 할 때는 가끔 이런 문제는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1982년에서 1986년 사이에 한강 종합 개발을 진행하면서 강변을 정리해 공원과 고수부지를 만들고 올림픽대로를 만드는 공사에 대량의 연탄재를 흙 대신 사용했다. 연탄재는 품질이 균일하면서 흙과 성질이 비슷한 점이 있어 잘만 하면 성토재, 복토재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6백년 만상>이라는 자료에 따르면 한강 공원 부지의 경우 전체에 사용한 400만 ㎥의 성토재 중에 4분의 1인 108만 ㎥ 만큼이 연탄재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서울 시민들이 오늘도 사용하고 있는 강변의 여러 시설물을 지금도 바닥에서 받쳐 주고 있는 것은, 바로 한 세대 전에 천만 시민들의 겨울을 덥혀 주었던 연탄이다.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라는 시 구절은 잘 알려진 편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은 점차 잊히고 있는 연탄의 시대를 기리면서, 여기에 한 마디를 더 보태고 싶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올림픽대로를 떠받쳐 보았느냐’
출처 : 서울특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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