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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비밀 상점 같아요" 다시 만난 세운상가의 세계

by 카이로 B.G.PARK 2024.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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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전자박물관
서울이란 도시가 지닌 매력 중 하나가 공간을 이루는 다양한 시간의 층위 아닐까 싶다. 조선시대 집터에 근현대 건축물이 들어서고, 그 골조를 활용해 감각적인 복합문화공간이 탄생한다. 그렇게 한 공간에 쌓인 수많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마치 시간의 틈을 탐험하는 기분마저 든다. 아이와도 그런 특별한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로 세운상가를 선택한 이유다.
세운상가

땅이 기억하는 시간의 축적

세운상가 앞으로는 조선왕조의 사당인 종묘가 자리하고 그 뒤편으로는 한양도성을 관통하는 청계천이 흐른다. 조선시대 이 일대에 사람이 모여들고 상업이 번성했음은 쉬이 짐작할 수 있겠다. 한양을 그린 고지도에 따르면 이곳에는 당시 중부 관아가 자리했다.

실제 발굴조사에서도 청동거울이나 청동화로 등 제기용품과 함께 봉황문 막새기와, ‘천(天)’자 새김전돌 같은 민가에서는 사용하기 어려운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다. 이 같은 땅의 기록은 세운광장에 조성된 중부관아터전시실에서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시간의 축적’이라고 이름 붙은 토층이 전시되어 있는 ‘중부관아터전시실’
“엄마, 여기 박물관은 왜 흙을 전시해놨어요?” 아이가 가리킨 것은 ‘시간의 축적’이라고 이름 붙은 토층이다. 발굴조사 당시 현재 지표에서 원토층까지 조선전기와 후기, 근현대를 아우르는 10개 토층이 발견된 것. 이를 근거로 원래 청계천변 습지에 말뚝을 박고 유기물과 모래, 진흙을 다져 대지를 조성했고, 15세기에 이르러 그 위에 건물이 들어섰음이 밝혀졌다.

흥미로운 것은 조선후기 건물이 들어서기 전에 두터운 숯층이 자리하는데, 이는 임진왜란 때 불에 탄 흔적이란다. 아이에게 땅이 품고 있는 역사를 하나하나 설명해줬더니 “우와, 그러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땅도 박물관인 거네요?” 단번에 토층의 의미를 읽어낸다.
한양을 그린 고지도에 따르면 이곳에는 당시 중부 관아가 자리했다. 청동거울과 막새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세계의 기운을 이곳에 모으다

일제강점기 세운상가 일대는 기존 건물을 모두 허물고 소개공지대, 즉 공습으로 시가지에 불이 났을 때 옆으로 옮겨붙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성하는 대규모 공터가 됐다. 해방 후 이 땅에 빈민들이 몰려와 터전을 잡았고, 6·25전쟁을 거치며 빈민촌은 남산 아래까지 확대되었다. 이에 서울시는 마구잡이로 들어선 판자촌을 모두 철거하고 1968년,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건물인 세운상가를 짓는다.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이 건물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디자인과 엘리베이터 덕분에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떠올랐다. 세운(世運)이란 이름에는 세계의 기운을 이곳에 모은다는 원대한 꿈을 담았다.
세운전자박물관에 과거 전자상가로 붐볐던 세운상가의 찬란했던 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흔히 세운상가하면 전자상가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 시작은 해방 전후 장사동 고물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외제품과 중고, 폐품을 모아 수리하고 개조해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쓰던 시절이었다. 미군부대 PX에서 나온 물건들이 이곳 노점상으로 흘러들었고, 손재주가 뛰어난 이들은 여기서 파는 이런저런 부품을 조합해 광석라디오와 진공라디오를 제작하기도 했다.

잠수함과 인공위성도 만들 수 있다던 청계천 장인의 전설은 세운상가가 들어서며 고스란히 이어졌다. 경제개발과 함께 텔레비전과 비디오플레이어, 카세트테이프 등이 대중화되면서 세운상가는 어깨가 부딪혀 걷기 힘들 만큼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3층에 마련된 세운전자박물관에 그 찬란했던 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세운테크북라운지, 도심산업그라운드 ‘을’ 등 시민들을 위한 공간도 마련돼 있다.
세운상가 곳곳에 세운테크북라운지, 도심산업그라운드‘을’ 등 시민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도심산업그라운드 ‘을’ 내부(좌)와 세운테크북라운지(우)
“엄마, 여기 전망대가 있어요!” 아이는 청계천이 한눈에 들어오는 다리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한낮의 더위를 피해 들어간 북라운지에선 좋아하는 도마뱀 책을 발견해 한참 재미있게 읽었다. 전시관을 구경하다 서울N타워를 직접 조립해볼 수 있는 키트를 선물 받고 깡충깡충 신나기도 했다. 
3층 외부상가에는 힙한 카페와 식당, 소품숍 등이 들어섰다.
한때 불법복제 소프트웨어나 음반을 몰래 판매하던 3층 외부상가에는 힙한 카페와 식당, 소품숍 등이 들어섰다. 덕분에 아이와 시원한 과일주스도 마시고 현지 느낌 물씬 나는 일본라멘으로 배를 채웠다. 갓 튀겨낸 쫄깃한 도넛을 한입 베어 물고 발아래 북적이는 도심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엄마가 상가에 가자고 하니 쇼핑하는 줄 알았다는 아이는 “여긴 정말 신기한 곳이에요, 꼭 비밀 가득한 상점 같다니까요!” 머무는 내내 눈이 반짝거렸다.
아이는 청계천이 내려다 보이는 다리를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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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 여행작가의 꿀팁! 
- 세운상가 운영시간은 09:00~19:00, 일요일과 공휴일은 휴무예요. 단 상점마다 운영시간이 다를 수 있어요.
- 세운상가는 진입로가 여러 군데인데 공간의 역사를 차례대로 살펴보려면 종묘 건너편, 세운광장을 시작점으로 잡길 추천해요.
- 중부관아터전시실은 1층 건물 뒤편에 자리하니 꼭 챙겨보세요!
- 최근 세운상가는 빈티지카메라를 찾는 이들로 북적인대요. 저렴한 가격에 아이용 카메라를 구입해보는 것도 추천해요.

 
출처 : 서울특별시 내손안에 서울
 
여행작가 권다현의 ‘아이랑 서울여행’ (11) 서울을 탐험하다, 세운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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