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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나면 쑥대밭…우리나라에도 토네이도가 일어날까?

by 카이로 B.G.PARK 2025.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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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바다에 나타난 용오름 현상

곽재식 교수의 ‘서울 속 숨은 과학 찾기’ (34) 서울에 용이 나타난다면?

아마 전설이나 괴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옛사람들이 공룡 화석을 보고 그것이 무슨 동물인지 상상하다가 세상에 용이 있다는 전설을 만들어 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조금 다른 방향의 추측으로는 악어와 같은 커다란 파충류 동물을 보고 그것을 과장한 이야기가 소문으로 돌다가 용 전설이 되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예를 들면 중국에는 양쯔강악어처럼 상당히 커다란 악어가 살고 있는데 이 악어가 가끔 늪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을 얼핏 보고 과장한 고대 중국인들이 엄청나게 커다란 신비의 짐승이 강물 속에 산다는 전설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고대 중국 기록을 보면 ‘좌청룡 우백호’라는 식으로 흔히 용의 색깔을 청룡(靑龍)이라고 하면서 푸른색으로 말하는 글들이 많다. 마침 실제 양쯔강악어를 보면 살짝 초록색이 감도는 회색인 경우가 많아 언뜻 푸르딩딩해 보이는 느낌이 있다.

한국은 어땠을까? 신기하고도 이상한 일이지만 고대의 역사 기록인 ‘삼국사기’를 보면 진지하게 역사 사실을 서술해 놓은 내용 가운데 당당하게 ‘용이 나타났다’는 내용이 있다. 어떻게 상상의 동물인 용이 실제로 나타날 수 있을까? 용이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어렴풋한 소문으로만 남은 것이 아니라 역사 기록에 정식으로 들어가 있으니, 이것은 그냥 옛 기록의 오류로 묻어 둘만한 내용이 아니라 그 뜻을 조금은 진지하게 따져 볼 필요도 있다. 그러고 보면 ‘삼국사기’에 용이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한두 건도 아니다. 특히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 중에 백제에 용의 출현 기록이 가장 많아서 97년, 238년, 316년, 455년, 477년 총 다섯 번에 걸쳐 용이 나타났다는 기록이 있다.

도대체 옛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이런 기록을 남긴 것일까? 하나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용의 색깔이다. 백제의 용 출현 기록 중에 97년 기록에는 용의 색깔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나머지 네 기록 중에서는 238년에 황룡이 나타났다는 기록을 제외하면 세 번의 기록은 모두 흑룡(黑龍) 즉 검은 용이 나타났다고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중국 고전에 자주 나타나 관례적으로 한문에 등장하는 용은 청룡이지만 정말로 한국의 고대인들이 자주 보았다고 생각한 용은 흑룡이라고 봐야 할 정도로 한국 용은 흑룡이 주류라는 뜻이다. 백제의 기록 말고도 유명한 ‘용비어천가’에 실린 이야기들 중에 이성계의 할아버지 이춘이 흑룡과 백룡이 싸우는데 이춘이 백룡 편을 들어 흑룡을 몰아낸다는 전설이 있는 등, 흑룡은 종종 한국 옛 전설에 등장하는 편이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한반도에 꾸준히 등장하면서 사람들이 검은 용이라고 생각할 만한 어떤 동물이나 자연 현상이 정말로 있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흑룡이라고 착각할 만한 뭔가가 있기는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백제를 휩쓴 용에 대해 한 번 짚어볼 만한 기상 현상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회오리바람이라고도 하는 토네이도다.
서울시립과학관에 전시되어 있는 11m 크기 인공토네이도 발생장치
 
토네이도는 미국 중부 및 남부 평원 지역에 자주 출현해 민가에 큰 피해를 주는 자연재해로 악명 높다. 그에 비해 한국에 토네이도가 나타난다고 하면 낯설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에도 바다에서는 의외로 몇 년에 한 번꼴로는 토네이도 현상이 관찰된다.

바다에 토네이도가 발생하면 꿈틀거리는 회오리바람이 온통 물을 빨아올리면서 허연 기둥이 되어 하늘로 치솟으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을 보인다. 이때 토네이도의 영향으로 많은 구름과 강한 비와 함께 번개가 몰아치는 것이 보통이다. 옛사람들이 본다면 용이 바다에서 하늘로 올라가면서 꿈틀거리고 있는데 용의 마법적인 힘 때문에 주위에 비바람이 몰아치고 번개를 떨어뜨린다고 했을 만한 장면이다. 2012년 10월 11일 울릉도 인근 바다의 토네이도 관측 보도를 비롯해서 현대 대한민국의 기상청에서도 이런 바다의 토네이도를 ‘용오름’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만약 용오름이 바다가 아니라 땅에서 일어난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토네이도가 육지를 휩쓰는 장면을 촬영한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그 색깔은 짙은 회색이나 검은색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흰 물빛이 부서지는 일이 많이 일어나는 바다에 비해서 육지에서는 흙먼지라든가 좀 더 어두운 물질이 더 많이 이끌려 들기 때문에 좀 더 검은 색이 나타나는 듯하다. 그렇다면 그런 검은 토네이도가 나타나 주위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모습을 보고 고대의 백제 사람들은 ‘흑룡이 나타났다’는 기록을 남겼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기록으로 ‘조선왕조실록’의 한 대목도 살펴볼 만하다. ‘선조실록’의 1605년 음력 6월 28일 기록을 보면 전라도를 다스리는 관찰사가 조정에 보고한 내용이 실려 있다. 이에 따르면 지금의 전라북도 익산 지역인 여산(礪山)에서 용이 나타났다고 한다. 용은 음력 6월 13일의 신시(申時) 그러니까 늦은 오후 무렵에 나타났다고 한다. 이어지는 실록의 내용에 따르면 꿈틀거리는 용 모양을 역력히 사람이 볼 수 있었고 사방이 구름과 안개로 뒤덮였으며 비바람이 크게 일어났고 천둥과 안개가 심했으며 민충일(閔忠一)이라는 사람 집에서는 집 안에 있던 물건이 모조리 공중으로 날아가 찾을 수 없게 되었고 그 집 아이까지 멀리 날아가 버렸다고 되어 있다. 이런 내용은 현대의 토네이도 피해를 묘사한 것과 흡사하다. 그렇기에 옛 사람들이 육지의 토네이도를 용이라고 착각했을 만한 증거가 될 수 있다.

만약 옛날에 그렇게 토네이도가 여러 번 있었다면 현대에도 한반도의 육지에서 토네이도가 발생할 수 있을까? 의외로 그에 대한 기록도 적지 않다. 화제가 되었던 사건으로는 2014년 6월 10일과 12일에 연달아 일어났던 토네이도 피해가 있었다. 6월 10일에는 경기도 고양시에서 토네이도가 관찰되었고 12일에는 광주광역시에서 토네이도 피해가 관찰되었다. 둘 다 인구 밀집 지역은 살짝 빗겨갔기에 큰 피해가 생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자동차라든가 비닐하우스가 손상되는 피해가 발생할 정도의 제법 큰 토네이도였다. 2019년 3월에는 충청남도 당진에 토네이도가 발생해서 제철소를 습격한 적도 있었다. 이 토네이도는 제품 출하장의 지붕을 날려 보내 공장 업무에 상당한 지장을 주기도 했다. 국내 토네이도에 대한 지식과 연구 부족으로 정확한 인과 관계를 뭐라고 밝히기에는 이른 단계이지만, 고양, 광주, 당진 모두 하필 옛 백제에 속하는 지역이라는 것도 눈에 들어오는 사실이다.
2019년 충남 당진에서 발생한 토네이도로 인해 제철소 지붕이 날아가는 모습. 동영상 갈무리
 
마찬가지로 옛 백제 영토에 속하는 서울에서도 현대의 관찰 기록 속에 토네이도가 발견된 사례가 있다. 그것도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많은 피해를 입힌 큰 재해 사례였다. 1964년 9월 14일과 15일 국내 일간지 신문 기사를 보면 9월 13일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에 강력한 바람이 비, 번개와 함께 몰아닥치며 대략 서울의 뚝섬에서 천호동 지역을 중심으로 피해를 입혔다고 한다. 이후 이 현상은 동쪽으로 진행하며 경기도 동북부를 파괴했는데, 굉장한 강풍과 함께 집과 사람들이 날아가는 현상이 발견되었고 물이 치솟아 공중으로 올라가는 현상을 목격한 사람들이나 ‘회오리바람’을 경험했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랬으니 분명 강한 토네이도가 그날 재해의 중심에 있었을 것이다. 2 킬로미터 떨어진 여관의 간판이 가정집에 날아들었다든가 사람이 바람에 휘말려 300미터를 날아갔다든가 하는 경험담도 보도되었다.

밤 중에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기에 정확히 어디까지가 토네이도의 피해이고 어디까지가 토네이도와 함께 일어난 다른 비바람이라든가 홍수의 피해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당시 신문 기사에서는 고작 한 시간 동안 몰아닥친 재해로 5,827채의 집이 파괴되었고 그 바람에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 곳을 잃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구가 조밀하게 모여 있는 서울 상황을 생각하면 커다란 토네이도를 맞이했을 때 이 정도 피해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현재까지 과학자들이 토네이도의 발생 원리를 세세하게 모두 밝혀내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대략의 원리는 알고 있다. 뜨겁고 습기찬 공기가 불안한 상황일 때 토네이도가 발생하며 특히 차가운 공기가 높은 하늘에 머무르고 있는데 문득 더운 날씨가 몰아닥치면 토네이도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같다는 분석이 보도된 적도 있었다.

그렇기에 많은 과학자들은 기후변화로 날씨 조건이 변화하는 데 따라 토네이도 피해가 더 커질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 단순히 토네이도가 더 자주 나타나거나 더 많이 나타난다는 문제보다도 평소에는 토네이도가 나타나지 않았던 지역에 토네이도가 나타난다거나 과거와는 다른 모습의 토네이도가 나타나는 변화를 걱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기후변화는 대체로 여름철이 길어지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토네이도를 비롯해 여름철 재난이 더 심각해질 위험에 대해서도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물론 그렇다고 당장 지금 미국 평원지대처럼 서울이 토네이도 피해의 확률이 높아졌다고 볼 수는 없다. 확률론적 위험성 평가(probabilistic risk assessment, PRA)라는 방법에 따르면 위험에 대한 대비는 그 확률에 맞추어 진행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여전히 확률이 낮은 재난인 토네이도를 염두에 두고 서울에서 모든 재난 대처 방법을 토네이도 피해가 상습으로 발생하는 곳과 같이 바꾼다는 것도 노력의 낭비일 것이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해 날씨로 인한 재난이 심각해져 가는 지금 추세를 고려하여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을 어떻게 좀 더 빨리 대피시키고 사람의 목숨을 어떻게 더 잘 구할 것이냐 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재난 대비 태세를 좀 더 강화하는 일 정도는 충분히 해 볼 만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속수무책으로 괴물에게 당할 수밖에 없었던 백제 사람들에 비해 현대의 우리는 검은 용의 정체를 알아내고 그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과학의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 서울특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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