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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청룡, 삼미슈퍼스타즈…응답하라! 프로야구 추억의 구단들

by 카이로 B.G.PARK 2025.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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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프로야구의 열기가 뜨겁다. 사진은 2025.4.20. 프로야구 경기가 열린 잠실야구장

신병주 교수의 사심(史心) 가득한 역사 이야기 (97) 프로야구 시대가 열리던 날

최근 프로야구의 열기가 대단하다. 주말에는 경기 대부분이 매진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야구장을 찾고 있다. 5월 18일에는 역대 최소 기간에 400만 관중을 돌파했다는 뉴스도 전해졌다. 1982년 프로야구 시대가 지역 연고제로 출발한 데는 1970년대 이후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고교 야구가 큰 몫을 하였다. 

고교 야구의 열기, 프로야구로 이어지다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를 거쳐 1981년까지는 그야말로 고교 야구의 전성기였다. 당시는 4대 신문사가 고교 야구 주관사가 되었는데, 4월에는 중앙일보 주최의 대통령배, 6월에는 조선일보 주최의 청룡기, 8월에는 한국일보 주최의 봉황기, 10월에는 동아일보가 주최하는 황금사자기 고교 야구가 열렸다. 대통령배, 청룡기, 황금사자기는 대회에 앞서 미리 예선전을 개최하였고, 예선을 통과한 고교만 참여할 수 있었다.

여름 방학 기간에 열린 봉황대기는 예선전 없이 개최하여, 야구부가 있는 고교는 전국에 그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필자의 모교인 대구 성광고는 1981년 야구부를 창단하였는데, 이 해 봉황대기 16강에 진출하여 학교의 이름을 알렸던 기억이 난다. 대통령배 고교 야구는 1967년 4월 25일 서울 동대문 야구장에서 개최되었는데, 당시 대통령이 시구를 할 정도로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 1981년까지는 고교 야구의 전성기였다. 사진은 1989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 개막식
조선일보 주최의 청룡기 고교 야구는 1946년 첫 대회가 개최될 정도로 역사가 깊다. 한국전쟁으로 1951년과 1952년 중지되기도 했으나, 1953년 다시 개최되었다. 청룡기가 창설된 이듬해인 1947년에는 동아일보 주최의 황금사자기 대회가 개최되었다. 1972년의 결승전에서 군산상고는 부산고에 4-1로 지고 있다가 9회말 5-4로 역전하였고, 이후 군산상고는 ‘역전의 명수’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군산상고가 역전하는 장면을 직접 시청했던 기억이 난다. 봉황대기 고교 야구는 전국의 고교가 참여하여 한국의 고시엔이라고도 불렸는데, 1971년에 한국일보 주최로 개최되었다. 재일동포 고교가 참여하는 유일한 대회이기도 하였다.

4대 고교 야구가 열리는 날이면, 고교 동문뿐만이 아니라 지역 출신들이 직접 경기장을 찾아 향토의 고교를 열렬히 응원하였다. 신문에도 연일 경기 상황을 알렸고, 결승전은 TV 생중계로 방송되면서 열기를 더하였다. 고교 야구의 스타들은 연예인 못지않게 인기를 끌기도 했다. 당시 서울에서는 서울고, 선린상고, 충암고, 배명고, 배재고, 중앙고 등, 인천에서는 인천고, 동산고 등, 부산, 경남에서는 경남고, 부산고, 부산상고, 마산상고 등, 대구에서는 경북고, 대구상고, 대건고, 대구고 등, 광주에서는 광주일고, 광주상고, 광주 진흥고, 전북에서는 군산상고, 전주고, 충남에서는 대전고, 천안 북일고, 공주고, 충북에서는 청주 세광고 등이 전국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고양시켰고, 학교의 인지도까지 높여 나갔다.

남양주군 마석면(현 남양주시 화도읍)에 소재한 심석종고는 1979년 봉황대기에서 8강에 진출하면서, 전국 유일의 면 소재지 야구부로 이름을 알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고교 야구의 열기는 지역 연고제의 프로야구가 출범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바탕을 제공하였다.
1982.7.16.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개장 기념 경기

프로야구 시대의 개막

고교 야구의 열기가 폭발하던 1980년대 초 한국도 이제 선진국으로 진입한 만큼 미국이나 일본처럼 프로야구가 생겨야 한다는 분위기가 대두되었다. 1982년 마침내 6개 구단으로 구성된 프로야구가 출범하였다. 서울을 연고지로 하는 MBC 청룡, 부산 경남의 롯데 자이언츠, 대구 경북의 삼성 라이온즈, 전라도의 해태 타이거즈, 충청도의 OB 베어스, 인천 경기의 삼미슈퍼 스타즈였다.

원년 개막전은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즈의 대결로 서울 동대문 운동장에서 대통령 전두환의 시구로 시작되었다. 당시의 개막전을 직접 시청하였는데, 청룡이 9회말 이종도의 만루홈런으로 11-7로 승리하였다. 원년 우승팀을 가르는 첫 한국시리즈는 전기리그 우승팀 OB 베어스와 후기리그 우승팀 삼성 라이온즈의 대결이었다.

이 대결에서는 최종전에서 만루홈런을 친 김유동의 활약으로 OB 베어스가 우승을 하였다. 개막전과 한국시리즈 최종전에서 나온 만루홈런은 프로야구의 흥행을 예고해 주는 신호탄이 되었다. 1983년은 1982년 한국에서 열린 세계야구 선수권 대회 참가를 위하여 프로야구 입단이 보류되었던 최동원, 장효조, 김재박, 김시진 등 국가 대표 선수들이 각 구단에 입단하면서, 더욱 짜임새를 갖추게 되었다. 특히 1982년 대회에서 한국은 한대화의 극적인 3점 홈런으로 일본에 역전승을 거두고 우승을 하였고, 이와 같은 극적인 장면은 프로야구의 열기 형성에도 큰 몫을 하였다.
2022년 잠실야구장 KBO올스타전에 등장한 추억의 옛 구단 마스코트들. 왼쪽부터 삼성 라이온즈, MBC 청룡,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

프로야구 구단 변천사

처음 6개 팀으로 출범한 프로야구 구단은 43년이 지난 현재 많은 변화를 겪었다. 원년에 창단하여 지금까지 팀을 유지하고 있는 구단은 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OB 베어스(1999년부터 두산 베어스) 3개 팀뿐이다. 1986년 충청, 대전을 연고지로 하는 빙그레 이글스가 창단되면서, 7개 팀 체제가 되었고 OB 베어스는 본래의 연고지인 서울로 돌아가게 되었다. 빙그레 이글스는 한화그룹에 인수되면서, 1994년부터는 한화 이글스가 되었다.

한화 이글스는 1999년에 우승을 차지한 이후 현재까지 우승 전력이 없다. MBC 청룡은 방송사에서 프로야구단을 보유한 만큼, 초기 프로야구 중계방송에서 큰 역할을 하였으나, 1990년에 LG 그룹에서 창단한 LG 트윈스에 인수되었다. ‘트윈스’라는 이름은 LG를 상징하는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나왔다. LG 트윈스는 창단한 해에 우승을 하는 최초의 기록을 남겼다. LG 트윈스는 1994년에 이어, 2023년 29년 만에 우승의 한을 풀었다.

1991년에는 쌍방울 레이더스가 창단되면서, 해태 타이거즈는 광주, 전남만을 연고지로 하고, 전북 지역을 레이더스에게 내주었다. 1982년에 창단한 해태 타이거즈는 2002년 기아 그룹에 인수되면서 기아 타이거즈로 이름을 바꾸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해태 타이거즈는 가장 우승을 많이 한 팀이다. 1983년,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1991년, 1993년, 1996년, 1997년 등 1980년대와 1990년대 해태 타이거즈의 우승은 당연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 기간 선동열, 김봉연, 김성한, 이순철, 이종범, 이대진, 이강철, 조계현 등 레전드 선수들이 해태에서 활약을 하였다. 기아 타이거즈로 구단이 바뀐 후에는 2009년, 2017년, 2024년 우승을 차지하였다.

원년 팀인 삼성 라이온즈는 1985년 전, 후기 통합 우승 이래 한 동안 우승을 하지 못하다가 2002년 우승 이후, 2005년과 2006년에 이어,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였다. 삼성 우승의 주역이만수(22번), 양준혁(10번), 이승엽(36번)의 등번호는 영구 결번되었다.
2015년 목동야구장 KIA타이거즈와 넥센 히어로즈 경기
또 다른 원년 팀 롯데 자이언츠는 1984년과 1992년 우승을 한 이후, 34년이 넘도록 우승을 하지 못하고 있다.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는 롯데가 삼성을 4-3으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였는데, 롯데 투수 최동원은 혼자 4승을 거두는 불멸의 기록을 남겼다. 당시 최고의 투수 최동원과 선동렬이 맞대결하는 모습은 최고의 관심을 끌었고, 두 사람의 대결은 2011년 영화 ‘퍼펙트 게임’으로 만들어졌다. ‘부산갈매기’를 목청껏 부르고, 어린아이에게 주운 공을 돌려주는 문화를 정착시킨 롯데 팬들의 한은 언제쯤 풀릴까?

1982년에 창단한 인천 연고지의 삼미 슈퍼스타즈가 가장 많은 변화를 겪었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프로야구 역사상 최약체 팀으로 기억이 되지만, 1983년 투수 장명부가 30승을 거두면서 상위권에 진입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1985년부터 청보 핀토스가 삼미 슈퍼스타즈를 인수하였지만 1987년까지만 존속하였고, 1988년부터는 태평양 돌핀스가 인수하여, 1995년까지 구단을 유지하였다. 돌핀스를 인수하여 1996년부터 출범한 현대 유니콘스는, 현대그룹의 파격적인 지원 속에 1998년과 2000년, 2003년, 2004년 4차례에 걸쳐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으나, 2007년 팀을 해체하여 많은 아쉬움을 주었다.

현대 유니콘스는 2000년에 인천 대신에 수원을 연고 지역으로 옮겼고, 2000년에 창단한 SK 텔레콤 모기업의 SK 와이번즈가 인천을 연고지로 하여 출범하였다. SK 와이번즈는 2007년, 2008년, 2010년, 2018년 우승을 하면서, 삼성 라이온즈, OB 베어스와 함께 2000년대를 대표하는 강팀으로 자리를 잡았다.

2021년에는 SK 와이번즈를 신세계 그룹에서 인수하여, 2021년 SSG 랜더스를 창단하였다. ‘랜더스(Landers, 상륙자들)’에는 인천 상륙 작전이 펼쳐진 인천시의 정체성과 새롭게 야구판에 상륙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SSG 랜더스는 창단 다음 해인 2022년에 정규시즌 개막부터 종료까지 144경기를 치르는 동안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는,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 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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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10구단 체제가 시작되다

2008년에는 서울을 연고지로 하는 새로운 프로야구단이 탄생하였다. 처음에는 우리 담배를 네이밍 스폰서로 두면서 우리 히어로즈라고 하였다가, 2008년 8월 26일부터 2009년까지는 서울 히어로즈로 명칭을 바꾸었다. 2010년부터 2018년까지 넥센타이어를 네이밍 스폰서로 하였다. 2019년 네이밍 스폰서가 키움증권으로 변경되어 현재의 이름인 키움 히어로즈가 되었다.

LG 트윈스와 OB 베어스가 서울 잠실야구장을 사용하면서, 히어로즈는 처음에는 목동야구장을 연고 구장으로 하였다. 2016년에 고척 스카이돔이 완공되면서 이곳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프로야구 구단 중 유일하게 돔구장을 보유하여 우천시에도 프로야구 경기를 할 수 있다.
2016년 고척 스카이돔이 완공되면서 히어로즈는 이곳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2011년에는 엔씨소프트에서 운영하는 NC 다이노스가 창단되었다. 연고지는 경상남도 창원시이며, 홈구장은 마산회원구 양덕동에 위치한 창원 NC파크이다. NC 다이노스는 2012년 퓨처스 리그 참가를 거처, 2013년 1군 리그에 참가하였다. 이로써 2012년까지의 8구단 체제를 깨고 9구단 체제를 열게 되었다. 다이노스는 2020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하였다.

2013년에는 수원을 연고지로 한 KT 위즈가 창단되었는데, 프로야구 역사에서 12번째로 탄생한 구단이다. KT 위즈의 창단으로 프로야구는 출범 이후 33년 만에 10구단 체제를 열게 되었다. 2014년 퓨처스 리그에 참가한 다음, 2015년부터 1군 리그에 참가하였다. 홈구장은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 수원종합운동장 내에 있는 케이티 위즈 파크이다. KT 위즈는 2021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하였다.

필자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프로야구 경기를 즐겼다. TV 중계가 주말에만 이루어진 시기에는 라디오 중계에 귀를 기울였고, 대구시민운동장 등 야구장도 자주 찾았다. 지금도 1년에 10번 이상은 잠실야구장을 찾는다. 2021년 3월에는 KBS ‘역사저널 그날’ 프로야구 편에 출연했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KBO 직원 대상 프로야구 역사 특강을 진행하기도 했다.

쾌적한 경기장의 시설들, 여성 관중의 대폭 증가와 가족 단위, 직장인 중심의 관객 문화, 치어리더들의 열정적인 응원과 경기장 내의 각종 이벤트, 여기에 더하여 야구장 대표 음식 치맥을 비롯하여, 구장별로 특징 있는 먹거리까지 완비되면서 프로야구장은 그야말로 ‘토탈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적 공간이 되었다. 푸른 하늘과 신록으로 넘쳐나는 이 계절에 프로야구장을 찾아 좋은 기억을 만들어 보기를 권한다.
 
출처 : 서울특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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