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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란 이름, 여기서 나왔다고? 절경 만끽하며 마음도 쉬어가는 곳

by 카이로 B.G.PARK 2025.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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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서 멀지 않은 인왕산 아래에도 ‘인왕사’가 있다. 
서울은 외국인들에게 매력 있는 도시다. 그런데 핫플이 늘어나고 고궁과 오래된 박물관 등을 많이 찾으면서도 우리 전통의 모습을 일상에서 접하는 게 쉽지 않다는 후기를 남기기도 한다. 실제로 궁궐을 제외하면 과거의 모습을 보기란 쉽지 않다. 조선왕조 500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모든 흔적은 박물관에나 가야 만날 수 있는 게 서울의 현재다.

그렇다고 서울에 오래된 공간이 없는 건 아니다. 전국 어디든 마찬가지지만 서울에도 뿌리 깊은 나무 같은 사찰들이 많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조계사는 물론이고 도선사와 진관사, 그 옆의 삼천사, 그리고 홍제천길 옥천암이나 접근성 좋은 화계사 등 언제 찾아도 뎅그렁 바람 따라 울리는 풍경소리에 마음의 주파수를 맞추며 쉴 수 있는 사찰이 수도 없이 많다.
산자락에 있다보니 꽤 가파르게 올라가 인왕사 일주문을 통과한다.
인왕산 아래에도 ‘인왕사’가 있다. 크고 작은 법당이 흩어져 산 아래 작은 마을을 이룬 이곳은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인왕사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한 후 경복궁을 수호하는 호국도량으로 창건했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방치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지금은 각기 다른 5개 종단의 열 개가 넘는 사찰이 ‘인왕사’라는 이름으로 공존하고 있다. 특히 꽃피는 봄날 바라보면 참 절경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마을이다.
국사당으로 올라가는 길 계단 옆 벽화 
인왕사를 지나면 가파른 계단이 이어진다. 그 끝에 인왕산 국사당이 있다. 여러 신을 모신 신당으로 조선시대에는 국가의 공식 행사로 기우제와 기청제를 지내곤 했다는 기록이 있는 국사당은 원래 남산 꼭대기에 있다가 일본인들이 남산에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1925년 강제로 이전되었다. 태조와 무학대사가 기도하던 자리여서 지금의 위치로 이전했다고 하는데 원래의 재료를 그대로 옮겨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중요민속문화재 제28호(1973년 7월 16일 지정)로 지정되어 있다.
인왕사 법당을 지나 국사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이어진다.
국사당은 조선시대의 모습 그대로 옮겨와 지어졌다. 
지금은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지도 않고 무속신앙이 과거처럼 일상적이지 않지만 그 옛날 사람들이 의탁하고 기도하던 곳이어서 마음이 조심스러워졌다. 오히려 우리나라 토테미즘에 관심 있는 외국인들이 찾아오기도 한다는데 마을 전체가 유럽의 어떤 마을들처럼 기도의 분위기가 배인 듯했다. 
선바위로 올라가면서 내려다본 국사당. 그 위로 성곽이 이어져 있다. 
몇 개의 계단을 오르면 선바위로 오르는 길과 크고 작은 기도처들이 숨겨진 길이 갈라진다. 국사당의 시간은 조선시대 초기로 올라가지만 선바위의 나이는 가늠할 수가 없다. 오래전부터 이 바위에서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고 여겨 무수한 사람이 찾았는데 국사당이 이곳으로 온 이후 더욱 늘어났다고 한다.
한양도성과 남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선바위로 올라가는 계단은 정말 급경사여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올라가야 한다. 1억 5,000만 년 전에 생성되었다는 선바위에서 무학대사가 기도를 했다고 전해진다. 스님이 장삼을 입은 것 같은 모습 때문에 ‘생각하여 닦는다’거나 ‘고요히 생각한다’는 뜻으로 '선(禪)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 여기서 기도 하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해서 ‘소원바위’라고 불리기도 한다.
선바위로 올라가는 계단은 아주 가파르다. 
기도하러 오는 사람들을 위해 바위 앞에 넓은 공간을 만들고 촛불봉헌대가 있고 심지어 현수막까지 붙어 있어서 좀 어수선해 보였다. 하지만 기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마음의 간절함 때문일 것이다. 
선바위 앞은 기도처로 만들어져서 오히려 자연스러운 느낌을 얻기가 어려워졌다. 
수많은 세월 풍화된 바위는 범접이 어려운 느낌도 드는데 바위의 옆모습과 뒷모습은 또 다른 분위기가 배어나온다. 뒤로 돌아가 소나무 옆에 서니 저 멀리 남산타워가 내려다보인다.
선바위 저 너머로 남산이 보인다. 
바로 여기서 ‘서울’이라는 이름이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 태조가 도성을 쌓을 때 선바위를 도성에 넣을 것인가 성 밖으로 할 것인가 문제로 정도전과 무학대사의 의견이 팽팽하게 갈렸다고 한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조는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태조가 눈 내린 선바위에 올랐는데, 나중에 성벽을 만든 안쪽은 눈이 다 녹은 반면 바깥쪽에는 눈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태조는 이를 하늘의 뜻이라고 여겨 눈이 녹은 경계를 따라 성을 만들었고 결국 선바위는 성곽 밖으로 밀려났다고 한다. 
맑은 날 선바위 뒷모습 
태조가 눈 녹은 자리를 보고 성곽 자리를 정했다고 하여 서울 성곽을 ‘설성’(雪城)이라 부르고, 도성을 눈 울타리, ‘설(雪)울’이라고 부르다가 '서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서울이 확장되면서 선바위는 서울의 한복판 종로구에 속하게 되었다.
눈 내린 날 선바위 뒷모습
선바위 뒤로 올라가 내려다보는 서울. 선바위 뒷모습도 보인다. 
선바위를 뒤로 하고 다시 바위를 오르면 평평하게 넓은 바위가 평상처럼 펼쳐진다. 햇빛 좋은 날 말 그대로 ‘멍 때리고’ 쉬기 아주 좋은 명당이다. 다시 커다란 바위를 돌아 오르면 해골바위가 머리 위로 나타난다. 이 바위 위로 올라서면 서울이 한눈에 펼쳐진다. 서대문 방향으로 서대문형무소도 바로 내려다보인다. 해가 질 무렵 어느 날은 정말 멋진 일몰을 볼 수도 있는 곳이다.
해골바위 아래서 내려다보는 서울 풍경. 저 멀리 남산과 롯데타워도 보인다. 
서대문형무소도 바로 아래로 환히 보인다. 
해골바위에 오르면 가장 멋진 일몰을 만날 수도 있는데 눈이 미끄러워 올라가지 못했다. 
해골바위에서 인왕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설 수 있고, 데크길로 내려가 무악재 하늘다리를 건너면 서대문독립공원으로 갈 수 있다. 3월에 접어들면 산책로가 샛노란 산수유꽃 터널 같아지는 길이다.
해골바위에서는 서울성곽길, 무악재 하늘다리, 선바위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다. 

 

내려올 때는 인왕산 호랑이 동상 쪽으로 향해도 좋다. 남산이 마주보이는 성곽을 조망하고 호랑이 동상 앞에 서면 오른쪽은 단군성전 사직단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길을 건너 직진하면 초소책방을 지나 윤동주문학관으로 이어진다. 가는 도중에 수송동계곡으로 내려가 서촌에서 근사한 식도락을 즐길 수도 있다.
인왕산 호랑이 동상에서 단군성전이나 사직단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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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서울을 만날 수 있는 인왕산 자락에는 어디서 목적지를 바꿔도 좋은 곳이 사방에 있다. 종로나 서대문에서 갈 수 있는 길도 여러 갈래다. 그다지 험한 길도 아니어서 누구나 오를 만한 코스이기도 하다. 햇빛 좋은 날이든 눈 내리는 오후든 쉬엄쉬엄 걸으며 한껏 마음을 쉬어봐도 좋겠다. 
출처 : 내손안에 서울, 시민기자 이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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