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은 다채롭고 깊이 있는 음식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주로 우육탕면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다행히 최근 서울에서도 타이완의 복합적인 맛을 경험할 수 있는 식당이 늘어나고 있다. 새로운 미식 세계, 타이완 요리 여행을 떠나보자.
마침 눈보라가 세게 쳤다.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 가게를 찾는데 꽤 멀다. “어서 오세요. 저희 가게가 좀 작지요?” 타이완 식당 ‘대만오빠’의 셰프이자 주인 송진론 씨가 취재진을 맞아준다. 귀여운(?) 상호인데, 음식은 진지한 본격파다. “혼자 일하고 손님 맞고 해요. 바쁘지만 재미있어요.”
송진론 씨는 타이완에서 왔다. 한국인 아내와 일본에서 워킹 홀리데이 멤버로 만나 사귀고 결혼했다. 타이완의 수도 타이베이 출신으로 원래는 요리사가 아니었다. 생활을 위해 타이완 요리를 배웠는데, 맛이 제대로다. 집안 어른들, 특히 할머니와 어머니의 손맛과 비법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타이완 요리는 중국 요리면서 동시에 타이완만의 고유성을 갖고 있다. 타이완의 역사를 반영한다. 아시다시피 대륙에서 건너온 국민당을 비롯한 사람들과 원주민의 공동체가 현재의 타이완을 이뤘다. 음식은 더 복잡해서 중국 남부의 하카 요리와 푸젠성, 광둥성의 남방 요리가 색을 입혔다. 이미 명·청나라 시대에 전달되었다. 게다가 현대에 와서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음식에도 영향을 받았다.
다양한 문화가 녹아든 타이완 요리
한국에는 우육탕면(우육면, 뉴러우미엔)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알고 보면 타이완 요리는 더 복잡하고 깊고 높은 수준의 요리 문화를 보여준다. “서울은 아직 타이완 요리가 시작 단계에 있어요. 제가 하는 요리는 서울 사람이 좋아하는 타이완의 일부 대표적인 음식이에요.” 원래 중국 대륙 서부 음식인 우육면은 중국의 주요 대도시로 퍼져갔고, 타이완에서도 인기를 끌게 됐다. 수도 베이징에서도 아주 많이 먹는 국수다. 말하자면 전국 인기 메뉴이고, 어떻게 보면 세계 메뉴가 되어가고 있다.
우육면은 불과 10여 년 사이 서울에도 크게 퍼졌다. 아마 해외여행이 많아지고, 중국과 타이완 현지에서 이 음식을 먹어본 한국인들이 새로운 수요가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중국계 셰프가 만드는 우육면도 많지만, 한국인이 만들어서 히트를 치는 집도 많다. 시내 곳곳에 전문점이 생겨나 직장인의 흔한 점심 메뉴에 들어갔고, 배달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또 여러 편의점에 인스턴트 면으로 들어와 있을 정도다. 굵직한 소고기 고명, 중국적인 향신료와 간장 맛이 이국적이면서도 익숙한 느낌을 준다. 대만오빠에서도 최고 인기 메뉴다.
공통점이 많은 타이완과 한국
취재를 하다 보니 타이완과 우리의 공통점이 꽤 많다. 군대가 징집제를 오래 실시한 것도 같다. 그도 1년 이상 복무했다. 그것도 공수부대원이었다고. “힘들었죠. 한국 사람들도 대부분 군대를 가니까 타이완과 뭔가 더 가까운 느낌이 있어요.” 한국인은 타이완 여행을 많이 간다. 저비용 항공사 시대가 열린 후에 부쩍 늘었다. 사철 온화한 날씨, 저렴한 물가, 맛있는 음식이 한국인을 부른다.
여담이지만, 타이완에는 한국식 중국요릿집도 있다. 1970~1980년대 한국의 화교들은 타이완 국적이었는데, 이들이 일종의 귀국을 하게 된 것. 그중 일부가 한국식 중국요리를 선보였다. 짜장면, 짬뽕 같은 건 타이완에 없기 때문에 특별한 음식 대우를 받는다. 나는 코로나19 시기 이전 타이베이에 간 적이 있는데, 시내에서 한국식 중국요리를 먹어보기도 했다.
파이구판에 들어가는 돼지고기에 튀김옷을 입히는 과정.
이미엔에 들어갈 면을 삶는 송진론 사장.
타이완 사람들의 솔 푸드, 루러우판
타이완 요리 중 한국에서 우육면 다음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루러우판이다. ‘루(滷)’는 소금(간장)에 절였다는 뜻이고, ‘러우(肉)’는 고기, ‘판(飯)’은 밥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해진 동파육덮밥과 비슷하다. 송진론 씨의 설명을 들어보자. “중국 민족은 삼겹살을 간장과 향신료에 절여서 요리한 음식을 좋아해요. 훙사오러우·동파육·루러우, 이런 것들이 다 비슷한 계열입니다.”
지역마다 양념이 다를 뿐 유사한 음식이라고 볼 수 있다. 타이완의 루러우판은 고기를 작게 자르고, 간장 색깔을 짙게 하지 않는 것이 특색이다. 타이완은 국토는 작지만 산지가 많아서 교통이 서로 잘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역마다 독자적인 문화가 발달했는데, 그 때문인지 루러우판도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대만오빠의 루러우판은 셰프의 고향인 타이베이식이다.
“물론 할머니의 손맛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어릴 때부터 많이 먹었어요. 할머니, 어머니가 만들어둔 것을 밥에 얹어 먹는 식이에요. 언제든 먹을 수 있는 음식입니다. 고기도 고기지만, 양념이 중요해요. 그 양념 국물을 밥에 얹어 먹는 것이지요.” 과연 밥에 양념을 비벼서 먹자 향기롭고도 기름진 중국 음식의 특색이 다가온다.
루러우판은 반투명하게 조린 껍질(돼지고기 오겹살을 사용)과 적당히 기름진 소스가 어우러져 깊은 맛을 낸다. 여기에 점을 찍는 것은 타이완식 양념이다. 송진론 씨가 건네준 것은 바로 라조장, 즉 한국으로 치면 고추양념장이다. 마늘과 붉은 고추를 넣어 기름에 살짝 볶은 후 상온에 두고 먹는다. 이 양념이 더해지면서 느끼한 맛을 없애주고 입안이 깔끔하게 정리된다. 얼얼한 맛이 여운을 준다.
타이완을 대표하는 ‘내셔널 맥주’를 마시며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송진론 사장과 박찬일 셰프.
돈가스? 아니, 타이완식 파이구판!
이런 음식은 더운 타이완의 거리 음식이기도 하다. 야시장이 흔한 건 더운 날씨 때문에 한낮을 피해 서늘한 저녁에 장이 서는 것인데, 야시장이란 곧 가설 식당이 모여 있는 곳으로 봐도 된다. 이런 야시장의 인기 메뉴가 바로 루러우판이다.
물론 시내의 골목길 구석구석에 루러우판 전문점이 있고, 심지어 학교급식에도 제공되는 메뉴다. 한국으로 치면 제육덮밥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이름은 하나지만 요리사마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맛을 내는 건 당연한 이치다. 송진론 씨의 루러우판은 담백하고 감칠맛이 좋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요리는 일종의 돈가스덮밥과 비슷한 ‘파이구판’이다. ‘파이구(排骨)’, 즉 ‘배골’이란 갈비를 뜻한다. 돼지갈비에서 뼈를 발라내고 굽거나 튀겨서 밥에 얹어 먹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 음식의 영향을 받아 돈가스 형태를 띠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다만 고기를 소금과 양념에 염지해 고슬고슬하게 튀겨내기 때문에 돈가스와는 꽤 다른 요리라고 할 수 있다.
타이완은 더운 나라여서 차갑고 달콤한 음료도 맛있고, 종류도 많다. 물론 나는 맥주에 더 관심이 간다. 타이완 여행을 할 때 맥주를 즐겨 마셨다. ‘내셔널 맥주’라는 브랜드가 대부분이다. 맥아가 달큼하고 깔끔한 뒷맛을 낸다. 망고로 만든 맥주도 있다. 이런 술을 이 가게에서도 마실 수 있었다.
아직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단단미엔(擔擔麵)’도 타이완의 유명 음식이다. 일본에서 오히려 일찍 인기를 끌어 전국적으로 즐기는 국수인데, 돼지고기와 땅콩을 넣어 맵게 비벼 먹거나 국물에 담가 먹는 면으로 점차 한국에도 알려질 것으로 보인다.
타이완을 대표하는 다양한 요리
뉴러우미엔(우육면)
국내에서는 우육탕면이라 불리는 타이완의 대표적인 소고기 국수 요리. 진한 소고기 육수에 부드러운 소고기와 쫄깃한 면이 어우러진다. 얼큰한 국물과 향신료가 조화를 이루며, 지역마다 스타일이 조금씩 다르다.
단짜이미엔
타이완 남부 타이난 지역에서 유명한 국수 요리다. 새우 육수에 다진 돼지고기와 숙주, 마늘 등을 넣어 감칠맛을 극대화했다. 가벼우면서도 깊은 맛이 나는 국물 요리다.
루러우판
타이완식 돼지고기덮밥으로, 간장과 향신료에 조린 다진 돼지고기를 흰밥 위에 올려 먹는 타이완 서민 음식이다.
바오
부드러운 찐빵 속에 돼지고기, 절인채소, 땅콩 가루 등을 넣은 타이완식 버거다.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으며, 전통 스타일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변형된 바오도 인기를 끌고 있다.
지파이
타이완의 인기 길거리 음식으로, 크고 바삭한 닭 가슴살 튀김이다. 한국의 치킨보다 더 크고 얇게 펼쳐져 있으며, 향신료를 더한 튀김옷이 특징이다.
바오빙
곱게 간 얼음 위에 연유, 팥, 망고, 타로볼, 버블티 토핑 등을 올려 먹는 빙수.
서울 속 리틀 타이완
루러우판·우육면·바오 등 타이완은 중국, 홍콩과 비슷하면서도 풍부한 향신료와 다양한 식재료가 조화를 이루는 음식 문화로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는다. 서울에서도 타이완 현지의 맛을 그대로 재현한 레스토랑들이 있다. 정통 레시피와 섬세한 조리 과정으로 타이완의 식탁을 서울로 옮겨온 맛집 세 곳을 소개한다.
#7년의 경험이 담긴 정통 타이완식
대만오빠
도봉구 창동에 자리한 ‘대만오빠’는 타이베이 출신 사장이 할머니의 요리를 오랜 연구 끝에 재현 한 곳이다. 타이완 현지의 맛을 충실히 살리기 위해 전통 조리법을 따르며, 사장이 직접 만든 수제 라조장을 곁들이면 감칠맛이 더욱 배가된다.
대표 메뉴인 루러우판(돼지고기덮밥)은 간장과 향신료에 조린 돼지고기를 듬뿍 올려 깊은 풍미가 인상적이며, 뉴러우미엔(우육면)은 한약재를 넣고 우려낸 진한 육수와 쫄깃한 면이 조화를 이루는 인기 메뉴다. 이미엔(타이완식 비빔면)은 특제 소스와 다진 고기를 섞어 달큼한 감칠맛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바삭한 새우튀김과 달콤한 파인애플, 크리미한 소스로 단짠의 조화를 완성한 펑리샤추(파인애플 크림새우)도 빼놓을 수 없다.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돋보이는 타이완 가정식을 찾는다면 대만오빠가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인스타그램@taiwanoppa88 가격루러우판 7,500원, 파이구판 1만 원, 뉴러우미엔 1만2,500원, 이미엔 8,500원
#한입에 담은 타이완 길거리의 감성
바오서울 성수
성수동에 위치한 ‘바오서울 성수’는 타이완식 찐빵 바오를 정통 레시피로 구현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더한 곳이다. 부드러운 바오번 속에 간장에 조린 돼지고기와 땅콩 가루를 넣은 클래식 바오, 튀긴 치킨과 매콤한 소스를 더한 치킨 바오, 양고기의 깊은 풍미가 느껴지는 램 바오, 그리고 바삭한 새우 크로켓이 들어간 새우 바오까지, 네 가지 개성 넘치는 바오를 선보인다.
여기에 우육면·동파육덮밥·지파이 강정 등 다양한 정통 타이완 요리를 함께 즐길 수 있으며, 본토 레시피를 기반으로 완성도를 높였다. 세계적인 요리 학교 출신 셰프들이 운영하는 만큼 맛의 디테일까지 섬세하게 신경 썼으며, 감각적인 플레이팅과 매장 곳곳에 타이완 특유의 분위기를 담았다. 서울에서 다양한 타이완 요리를 경험하고 싶다면 바오서울 성수를 방문해보자.
서울 동대문구에 자리한 ‘와까리꽁’은 7년간 타이완에서 생활한 요리사 출신 사장이 홀로 운영하는 정통 타이완 가정식 전문점이다. 가게 이름인 와까리꽁은 타이완어로 ‘내가 너에게 말해줄게’라는 뜻이다.
대표 메뉴인 루러우판은 간장과 향신료에 조린 돼지고기를 듬뿍 올려 깊은 감칠 맛이 특징이며, 자오파이미엔은 도삭면을 간장과 땅콩 소스에 비벼 먹는 비빔면이다. 맑은 육수에 얇은 피 만두를 담아낸 훈툰탕(타이완식 만두탕)과 매콤한 양념으로 버무린 훙유차오서우(타이완식 비빔만두)도 인기다.
화려한 장식 없이도 타이완의 감성을 가득 담은 이곳은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타이완 뉴스와 음악, 현지식 메뉴판과 소품 덕분에 마치 타이완의 작은 식당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박찬일 1965년 서울 출생.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노포의 장사법>, <밥 먹다가 울컥> 등의 책을 내며 ‘글을 맛있게 쓰는 요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울이 사랑하는 음식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널리 알리면서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