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도를 거절하시는 것 같아도 계속 기도하라
마리아는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난처한 순간, 넉넉지 못한 형편의 양가 부모들이 당황하며 가난한 형편을 슬퍼하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그 순간, 마리아는 하객들 속에 섞여 있던 아들 예수님을 데려와 상황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한다.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처음부터 포도주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준비한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뜻이다. 마리아는 가타부타 설명 없이 그저 이 난처한 상황만을 예수님께 알려드린 것이다. 이때는 아직 예수님께서 어떤 기적도 행하시기 전이었다. 그런데도 마리아는 어떻게 예수님에게 이 문제를 가지고 갈 생각을 했을까?
마리아는 예수님이 자기 아들이지만, 그분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30년 전,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했을 때, 환상 가운데 나타난 천사는 태어날 아이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예수가 태어났을 때, 베들레헴까지 찾아온 동방박사들의 방문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예수는 자라면서도 보통 아이들과는 달랐다. 어릴 적부터 예루살렘 성전에서 학자들과 성경을 토론할 때에도 막힘이 없던 예수였다. 그의 삶에는 늘 거룩한 성령의 임재가 함께했다. 이를 알고 있었던 마리아는 이 난관을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예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 요 2:4
한글성경에서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여자여”라고 부른 것은 어머니를 부르는 호칭치고는 다소 무례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헬라어 “귀나이”는 고대 그리스에서 왕이 왕후를 부를 때나, 남편이 아내를 사랑스럽게 부를 때 사용하는 존칭어였다. 즉 깊은 사랑과 존경이 담긴 표현이었다.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는 말은 “이 일은 제가 관여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라는 뜻의 공손하면서도 분명한 거절의 메시지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가?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는 말씀 때문이다. 여기서 ‘때’란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특정한 시간, 영적인 의미가 있는 약속된 때를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공표하고 사역을 시작하실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일 지금 이 잔치에서 기적을 행하시면,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게 되고, 메시아로서의 공식적인 사역을 바로 시작하게 된다. 그러니 지금은 섣불리 나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지간하면 사랑하는 어머니의 요청을 받아들일 법도 한데, 예수님께서는 철저히 하나님의 뜻과 타이밍에 따라 사역을 이루시고자 분명하게 거절하신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예수님의 그 정중한 거절에 대한 마리아의 반응이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 요2:5
마리아는 어쩌면 매정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아들의 거절에 불쾌함을 드러내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아들아, 엄마가 이렇게 간곡히 부탁하는데 어떻게 단칼에 거절할 수 있니?”라는 한마디 아쉬운 반응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하인들에게 말한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이것은 앞뒤 맥락이 안 맞지 않는가? 분명 예수님은 거절하셨는데, 마리아는 마치 예수님이 “예스”(Yes)라고 하신 것처럼 그다음 단계 일을 진행시킨다. 하인들도 당황하고, 예수님도 당황하셨을 것이다.
“예스”와 “노”가 분명한 미국이나 영국 교회 성도들은 이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예수님이 분명히 “노” 하셨는데, 마리아가 왜 그러는지 이상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식 동양 문화에서는 이 상황이 이해된다. 세계적인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인류의 의사소통 방식을 ‘저맥락 문화’(Low Context)와 ‘고맥락 문화’(High Context)로 구분했다. 저맥락 문화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서양식 문화이고, 고맥락 문화는 함축적이고 돌려 말하는 방식으로 한국이나 동양권에서 나타나는 문화다.
이 문화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대화하면, 서양 사람들은 동양 사람들이 답답하다고 느끼고, 동양 사람들은 서양 사람들이 무례하다고 느낀다. 동양 문화에서는 “예스”이면서도 겉으로는 “노”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이스라엘 문화도 고맥락 문화에 더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예로부터 “예스”, “노”보다 “괜찮다”를 더 많이 써왔다.
“괜찮다”는 “관계하지 아니하다”의 준말이다. 한국말에서는 분명 표현은 “노”지만 실은 “예스”인 경우가 많고, 따라서 수신인의 센스가 중요하다. 듣는 사람이 눈치 있게 알아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처음에 “노”라고 하셨다가 나중에 “예스”로 응답하신 경우가 의외로 많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귀신 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처음에 냉정하게 거절하셨다. 그러나 그녀가 겸손히 포기하지 않고 간청하자, 오히려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하시며 딸을 고쳐주셨다. 처음의 “노”는 그녀의 믿음을 시험하신 것이었고, 사실은 누구보다 도와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도 마리아는 예수님의 거절에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응답받을 준비를 시키고 있었다.
우리도 기도할 때 주님께서 마치 거절하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주님이 무관심하시거나 화나신 것 같기도 하고, 낙담되기도 한다. 그러나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 내 상황 그대로를 주님께 아뢰고,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따르겠다는 자세로 엎드려야 한다. 겉으로는 “노” 같아도, 주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의 간절한 기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신다. 주님은 마음이 너무나 여리셔서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보면 주님이 처음에 거절하시더라도 낙담하지 않고 계속 매달릴 수 있는 기도의 배짱, 기도의 뒷심이 약한 것 같다. 주님이 거절하시는 것처럼 느껴지면 쉽게 낙담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몇 번 기도해보고 응답이 없으면 ‘에이, 안 되나보다’ 하고 손을 놓는 것이 문제다.
만약 지금 당신이 그런 상황이라면, 다시 한번 포기한 그 자리로 돌아가 주님께 간구하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매달리는 사람을, 주님은 결코 밀어내지 않으신다.
처음에 거절하신 것처럼 보여도 때가 되면 반드시 주신다. 내가 생각한 방법은 아닐지라도 주님만의 특별한 방법으로 응답하신다. 이것을 믿으면 우리 기도에 다시 힘이 날 것이다.
사라질 때까지 기도하라, 한 홍
† 말씀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누가복음 18:7~8
† 기도
주님, 때로 나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 같이 느껴질 때에도 주님은 나의 기도를 듣고 계시며 여전히 함께 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그렇기에 주님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기도함으로 이 상황 가운데서도 주님의 뜻을 찾고 구하는 자 되길 소망하오니 기도한 그대로 내가 생각한 방법이 아닐지라도 주님의 방법으로 응답하실 주님을 의지하며 지치지 않고 인내함으로 주님께 기도하기 원합니다.
† 적용과 결단
주님께 오래도록 기도한 기도 제목을 두고 낙심하지 않고 내가 생각한 방법이 아닐지라도 주님의 방법으로 응답하실 주님을 기대하며 나아가기로 결단합니다.
출처 : 갓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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