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약령시의 어제
조선 17대 왕인 효종(재위1650~1659) 2년에 시작되어 일제 말엽인 1943년까지 약300년간 한약재 교육을 담당했던 특수시장 약령시는 약재료가 주로 많이 생산되는 경상도, 강원도, 전라도에서 모이고 헤어지는 일이 편리한 대구, 원주, 전주의 3개소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이러한 약령시가 개설된 이유는 각 산지에서 나오는 약재들이 각각 다르므로 인삼을 구하려면 금산을 찾아야 되었고, 반하를 구하려면 제주도로 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급한 상황에 바로 약을 처방하지 못해 응급환자가 목숨을 잃기도 해 나라에서 의도적으로 약령시를 형성시켰던 것이다.
그 중 서울약령시는 조선시대에 여행자에 대한 무료 숙박과 의지할 곳 없는 병자에 대한 치료를 담당하던 구휼(救恤)기관인 보제원(普濟院)이 있던 곳으로 서울특별시에 유물 제23호로 지정했다. 이러한 구휼정신을 기반으로 근래에 이르러 한의약의 유통, 진료, 투약의 중심지인 한약상가에 전통한의약의 발전과 제세구민을 위한 선조들의 위업을 계승하고자 서울특별시가 서울약령시로 지정한 것이다.
현재 모습
오늘날 전국전인 한약재의 집산지인 서울약령시는 유통의 편리함 때문에 1960년대 청량리역을 중심으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여 동대문구 제기동 용두동 일대 약 8만여평의 부지에 한의원, 약국, 한약국, 한약방, 한약재상 등 1천여 개 의 한의약 관련 전문업소가 모였고, 경제발전과 더불어 질적·약적 팽창을 거듭하면서 명실상부한 한국 제일의 한약시장 및 한방진료, 투약지역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급성장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약령시장 내의 한의약 관련 단체들로 한약가 협의회를 구성하여 1995년 6월 서울특별시로부터 ‘서울약령시’로 지정 승인받게 되었다. 또한, 2005년 7월 재정경제로부터 서울약령시 한방산업특구로 지정되어 특화산업을 통한 관광인프라 구축으로 관광명소로 발전시키며 지역발전과 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관광인프라 구축의 첫 사업의 결과로 2006년 9월 서울약령시 한의약박물관을 개관하고, 특구지역 내 환경개선사업을 시행하였다. 2012년에는 중소기업청 특성화시장 육성사업과 2013년 7월 서울시로부터 ‘한방특정개발진흥지구’로 선정, 2017년 서울한방진흥센터 완공 및 한의약박물관 이전으로 국내 최대 한방시장으로서 전통과 신뢰를 바탕으로 세계최대 한방시장으로 도약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강북농수산물검사소를 통해 양질의 한약재가 유통될 수 있는 한약재 품질검사 강화 및 한의약 단체를 통한 자율정화활동, 품질안전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각 대한 한약관련 학과와의 산·학·관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한방의 계승 발전을 도모함으로써 대한민국 건강 1번지를 넘어 세계 최대 한약재 전통시장으로 도약을 기대하고 있다.
약령시(藥令市)는 원래 조선 효종 때 귀한 한약재의 수집을 위해 주요 약재 생산지에 관찰사를 상주시키고 왕명으로 만든 약재상 집결지이다. 그 당시에는 약재의 채취, 수확 시기에 맞추어 춘령시와 추령시로 1년에 두 번 열리는 계절장이었다. 현재는 서울약령시 이외에도 대구, 제천 등 전국에 여러 약령시가 있지만 서울약령시가 규모나 역사로 볼 때 가장 큰 시장이다. 현대적인 서울약령시의 역사는 196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동부 도심권의 교통 요충지인 청량리역과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한약 상인들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구성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의 농민들이 생산하거나 채취해온 농산물과 채소 및 임산물들이 옛 성동역(城東驛, 현 한솔동의보감)과 청량리역을 통해 몰려들어 그 반입과 판매를 위해 인근 논을 매립한 공터에서 장사를 벌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연히 시장이 형성된 것이 서울약령시의 시초이다.
1960년 6월 공설시장 개설 허가를 받은 후, 서울 시내에서 모든 농산물을 골고루 갖춘 가장 싸게 파는 시장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특히 한약재의 주산지인 강원도 등과 철도 및 도로로 편리하게 연결되면서 급속히 발전하여 1960년대 후반에는 한약재 등의 특종 물품을 취급하는 전문시장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지금과 같은 규모와 상품 구색을 갖추게 된 것은 1970년대이다. 종로 4가와 종로 5가에 모여 있던 전통적인 토박이 약재상들이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 서울약령시가 약재 집산지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1970년대부터는 전국적으로 명성이 알려지면서 시장은 급격히 확대되었고, 1980년 8월에는 시장 근대화 사업을 촉진시켜 근대 시장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1983년부터는 인삼과 꿀까지 취급하면서 서울에서 소비되는 인삼과 꿀의 약 4분의 3, 전국 한약재의 약 3분의 2가 서울약령시를 통해 유통되고 있다. 이러한 변천 과정을 거쳐 서울약령시는 전국에서 가장 큰 한약재 시장으로 자리를 잡았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약재시장으로 커나가고 있다. 그래서 중국과 대만, 홍콩, 일본, 뉴질랜드 같은 나라들과 활발한 수출입 활동을 벌이고 있다. 서울약령시장이 ‘서울약령시’라는 정식 명칭을 부여받은 것은 1995년 6월이었다. ‘서울약령시(전통한약시장지역)’로 지정된 이후 한약과 관련된 다양하고 새로운 시설과 제도들을 마련하고 운영하고 있다.